효자(孝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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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부여 출신의 효자. 김운신(金運新)[?~?]은 부여 출신의 효자로 이름났으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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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효자. 김원손(金元孫)[?~?]은 부여 홍산[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출신의 수군(水軍)으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고, 부모가 사망한 뒤에는 사당을 지어 모든 제사를 예법에 따라 거행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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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민진익(閔鎭翼)[1661~1731]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덕좌(德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민구(閔構)이고, 할아버지는 사섬시직장 민광윤(閔光尹)이다. 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이고, 어머니는 풍양 조씨(豐壤 趙氏)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아들은 민이수(閔頤洙)·민항수(閔恒洙)·민정수(閔鼎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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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박용급(朴用汲)[?~?]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석성현[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출신의 효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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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서공(徐恭)[1101~1171]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거란군을 물리치고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을 지낸 서희(徐熙)의 고손자이다. 아버지는 검교호부상서 판장작감사(檢校戶部尙書 判將作監事) 서균(徐鈞)이고, 어머니는 검교예부시랑 급사중(檢校禮部侍郞 給事中) 이당감(李唐鑑)의 딸 창화군대부인 이씨(昌化郡大夫人 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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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유승춘(柳承春)[1567~1603]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순원(順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응상(柳應祥)이고, 할아버지는 유경지(柳敬智)이다. 아버지는 유봉(柳菶)이고, 부인은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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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윤광은(尹光殷)[1634~1705]의 본관은 칠원(漆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사영(尹仕榮)이고, 할아버지는 윤인(尹璘)이다. 아버지는 훈련원주부 윤익(尹翊)이고, 어머니는 김덕유(金德裕)의 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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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이덕린(李德麟)[?~?]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금곡(金谷)이다.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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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전한로(田漢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아버지는 선무랑으로 이인도승(利仁道丞)을 지낸 전화(田和)이고, 어머니는 중랑장 황보린(皇甫璘)의 딸 영천 황보씨(永川 皇甫氏)이다. 부인은 숙부(叔父)인 승의부위 김경수(金敬修)의 딸 광주 김씨이다. 자식으로는 아들 3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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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정천세(鄭千世)[1609~1619]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충무위사과 정희영(鄭希永)이고, 할아버지는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이다. 아버지는 정택뢰(鄭澤雷)이고, 어머니는 정사경(鄭思敬)의 딸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다. 동생은 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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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조경성(趙景星)[1606~1671]의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순서(舜瑞)이다. 아버지는 조엄(趙渰)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부인은 순흥 안씨(純興 安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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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조효공(趙孝恭)[?~?]은 부여 임천(林川)[현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기거하며 몸소 제상(祭床)을 차려 절하며 애통해하였다. 곧이어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염채(鹽菜)를 먹지 않고 허리띠를 풀지 않았으며, 6년 동안 죽을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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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황진(黃璡)[1634~1666]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아술당(蛾述堂)이다. 할아버지는 황신(黃愼)이고, 아버지는 의주부윤 황일호(黃一皓)[1588~1641]이다. 첫 번째 부인은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여산 송씨(礪山 宋氏)이다. 아들은 황하신(黃夏臣)·황하민(黃夏民)·황하필(黃夏弼)이다....
열녀(烈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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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윤덕(閏德)[?~?]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이순립(李順立)과 혼인한 뒤에는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정성으로 보살폈다. 스무 살 때 남편 이순립이 사망하자 지극히 슬퍼하며 장례를 치렀고, 목욕재계한 후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이후 윤덕의 시신을 수습해 둔 곳에서 흰 기운 한 줄기가 위로 뻗쳐 하늘까지 닿았고, 사람들이 그러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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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임천 조씨(林川 趙氏)[1661~1722]는 부사 조현기(趙顯期)의 딸이다.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의 아들 이사명(李師命)과 혼인하여 전주 이씨(全州 李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이희지(李喜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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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여 지역의 열녀.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남편은 의흥위(義興衛)의 갑사(甲士)를 지낸 박원형(朴元亨)이다. 박원형의 처 경주 이씨는 부여에 살며 평소 남편을 지극히 섬겼는데, 어느 날 남편이 심한 병에 걸리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약에 타서 먹여 낫게 하였다고 한다. 경주 이씨의 행적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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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에 정려각이 있는 조선 후기의 열녀. 권이길(權頥吉) 처 예천 임씨(醴泉 林氏)[1594~1672]는 선전관을 지낸 임정문(林挺門)의 딸이자 판관 임계형(林繼亨)의 증손녀이다. 남편 권이길[1588~1627]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동지중추부사 권곤(權鵾)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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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열녀. 남원 윤씨(南原 尹氏)[?~?]의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윤형성(尹衡聖)이고, 어머니는 이사민(李師閔)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이조참판 유계(兪棨)의 아들 유명윤(兪命胤)과 혼인하여 기계 유씨(杞溪 俞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유상기(兪相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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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연일 정씨(延日 鄭氏)[?~?]는 동지중추부사 정만해(鄭萬楷)의 딸이다. 판서 이사명(李師命)의 아들 이희지(李喜之)[1681~1722]와 혼인하여 부여의 전주 이씨(全州 李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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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아버지는 정사경(鄭思敬)이다.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의 아들 정택뢰(鄭澤雷)[1585~1619]와 혼인하여 하동 정씨(河東 鄭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정천세(鄭千世)·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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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청주 한씨(淸州 韓氏)[1635~1673]의 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한진(韓縝)이고, 어머니는 이두망(李斗望)의 딸 광주 이씨(光州 李氏)이다. 동생은 사간을 지낸 한태동(韓泰東)이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외손녀이다. 청주 한씨는 좌랑 조인형(趙仁亨)의 아들 조귀중(趙貴中)[1634~1671]과 혼인하여 풍양 조씨(豐壤 趙氏) 문중으로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