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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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奎錫 |
영어공식명칭 | Choi Gyuse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영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규석(崔奎錫)[1858~1923]은 1858년 8월 1일 충청남도 보령군 주포면 주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김종석(金種錫), 박성요(朴性堯), 황우열(黃宇烈), 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고, 10매를 부여면 구교리[현 부여읍 구교리]에서 은산면에 이르는 도로에 뿌렸다.
「독립선언서」는 천도교 교단 조직을 통하여 전국 각지에 배포되었는데 부여 지역에 전달된 「독립선언서」는 익산군 대교구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3월 1일 천도교 중앙총부의 인종익(印宗益)이 「독립선언서」 4,000매를 가지고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배포하기 위하여 전주에 도착하였고, 「독립선언서」는 익산군 대교구장 이중열(李仲悅)과 익산군 함열교구원 민영순(閔泳淳)을 거쳐 김태호에게 전달되었다.
최규석은 「독립선언서」 배포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1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 형을 선고받았다. 최규석은 1923년 6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규석의 공적을 기려 200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