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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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應祿 |
영어공식명칭 | Jo Eungrok |
이칭/별칭 | 경수(景綏),죽계(竹溪),풍령군(豊寜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조응록(趙應祿)[1538~1623]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경수(景綏), 호는 죽계(竹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익희(趙益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세헌(趙世獻)이다. 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고, 어머니는 강지(姜漬)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유윤종(柳胤宗)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조극근(趙克勤)의 딸 광주 조씨(廣州 趙氏)이다. 부인 광주 조씨와의 사이에 아들 조방직(趙邦直)을 두었다. 형은 조응경(趙應慶)과 조응길(趙應吉)이다.
[활동 사항]
조응록은 1538년(중종 33) 부여 임천[현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서 태어났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79년 식년시 문과에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1588년 호조좌랑을 거쳐 1599년에 풍덕군수를 지냈으며, 1607년 광흥창수(廣興倉守)를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 폐모론과 관련하여 관원들이 연명한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고향인 부여 임천으로 낙향하여 지내다가 1623년(인조 1)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응록의 저술로는 『죽계유고(竹溪遺稿)』 2책이 전한다. 서문은 1806년에 8대손 조필감(趙弼鑑)이, 발문은 12대손 조응구(趙應九)가 작성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응록은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분조를 호종한 공으로 1613년 위성공신(衛聖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령군(豊寜君)에 책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