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18
한자 趙光亨
영어공식명칭 Jo Gwanghyeong
이칭/별칭 군실(君實),낙수(樂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6년연표보기 - 조광형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82년연표보기 - 조광형 사망
출생지 한성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묘소|단소 조광형 묘소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313-63[점상리 산168-1]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풍양(豐壤)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조광형(趙光亨)[1606~1682]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낙수(樂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고, 할아버지는 조응록(趙應祿)이다. 아버지는 전주부윤 조방직(趙邦直)이고, 어머니는 박준현(朴峻賢)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이장(李檣)의 딸이다.

[활동 사항]

조광형은 1606년(선조 39) 한성에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문사(文辭)와 역사 등을 공부하였는데, 장유(張維)가 조광형의 문장을 보고 장려하였다. 집에서는 유학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서당에 나아가서는 의관을 갖추고 공부하였다고 한다. 학문에서는 주자서(朱子書)와 이황(李滉)의 문집을 높이 평가하였다.

조광형은 아버지 조방직이 병이 들자 단지(斷指)하는 등 효를 실천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는 여막에서 생활하며 아침저녁으로 무덤을 찾았다. 병자호란 뒤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백마강의 하류인 사호(沙湖) 일대에 거주하면서 근처에 있던 윤문거(尹文擧)·유계(俞棨) 등과 교유하였다. 조광형은 1682년(숙종 8)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광형의 저술로는 『낙수유고(樂叟遺稿)』가 전한다.

[묘소]

조광형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313-63[점상리 산168-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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