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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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제사의 예법. 집안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절차와 예법이 다르다고 해서 쓰이는 말인 가가례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가 『가례(家禮)』에서 쓴 예(禮)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는가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조선시대에 예론의 해석 방법은 크게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나누어졌다. 기호학파는 『가례』의 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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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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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재상들의 간찰첩. 『명재수간(名宰手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만년에 10여 년간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이름 있는 재상들이 보낸 간찰들을 묶은 간찰첩(簡札帖)이다. 간찰들은 1640년(인조 18)부터 1659년(효종 10) 사이에 쓰여진 것들로 짐작되며, 모두 18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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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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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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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년(현종 16) 송시열이 심곡서원 강당 건축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심곡서원 강당기(深谷書院 講堂記)」는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5세손인 조위수(趙渭叟)가 심곡서원의 강당을 건축하고 난 뒤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게 글을 청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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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민병승이 심곡서원 강당 중건의 전말을 지은 기문. 「심곡서원 중건기(深谷書院 重建記)」는 심곡서원 건축물이 오랜 세월의 흐름에 퇴락해지자 새로 중건하고 낙성하면서, 용인의 유림들이 민병승(閔丙承)[1866~?]에게 글을 청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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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김상헌이 심곡서원 중건에 즈음하여 지은 상량문. 「심곡서원 중건상량문(深谷書院 重建上樑文)」은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심곡서원 중건 상량식(上樑式)에 즈음하여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후손들이 글을 청하자 지어 준 상량문(上樑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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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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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장(子章), 호는 창주(滄洲). 심탁(沈倬)의 아들이며,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심지한은 1618년(광해군 10) 동학유생(東學儒生)으로 조경기(趙慶起) 등 8인과 함께 폐모론을 주도하는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認)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상소하였다. 이 일로 아버지 심탁과 함께 가산이 적몰되고, 문외출송(門外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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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계(竹溪). 자는 흥숙(興叔), 호는 우졸재(愚拙齋)·백암(栢巖). 관찰사(觀察使) 안종도(安宗道)의 증손이며, 좌찬성으로 추증된 안세복(安世復)의 손자이며,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은 판서 이경황(李慶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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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정을 시조로 하고 이유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우봉이씨(牛峰李氏)의 선계는 신라 때 공신이 된 이두창(李頭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이공정(李公靖)을 시조로 삼고 있다. 이공정은 고려 명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벽상삼한공신(壁上三韓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잠성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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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재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남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문헌에는 57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영양·의령·고성 3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상세히 알 수 없다. 이들 세 본관은 모두 같은 시조에서 분파한 혈족으로 남민(南敏)을 시조로 삼고 있다. 남민은 원래 중국 봉양부 여남(汝南)[지금의 하남성 여남현] 사람으로 본명은 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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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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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이며,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湖)다. 증조부는 이계(李啓),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 아버지는 대제학 이명한(李明漢)이다. 외조부는 박동량(朴東亮),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대교(待敎)·교리(校理) 등을 거쳐 이조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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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추(士秋), 호는 귀락당(歸樂堂)·행호거사(杏湖居士)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된 중부(仲父) 이흡(李翕)의 후사가 되었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효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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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부인은 박호(朴濠)의 딸이다. 이숙(李䎘)[1626~1688]은 인조 대부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 35년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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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화(仲和).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정랑(刑曹正郞) 이빈(李贇)이며, 어머니는 찬성(贊成)에 추증된 전의(全義) 이언우(李彦佑)의 딸이다. 부인은 현감 수안(遂安) 이형장(李亨章)의 딸이다. 이시정(李時程)[?~1653]은 선조 대에서 광해군, 인조, 효종의 4대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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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완 대장과 장사 방울이 이야기. 이완(李浣)[1602~1674]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효종의 북벌정책을 보필하며 국방 체계와 군비, 병력 정비에 기여하였다. 한성부판윤과 공조판서, 형조판서, 수어사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다. 무신으로서 현달하였고, 야심찬 북벌정책을 추진했다는 특이한 성격으로 인하여 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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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서 이완 대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완(李浣)[1602~1674]은 효종의 북벌정책을 보필하며 국방 체계와 군비, 병력 정비에 기여하였던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한성부판윤과 공조판서, 형조판서, 수어사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다. 무신으로서 현달하였고, 야심찬 북벌정책을 추진했다는 특이한 성격으로 인하여 야사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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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익은 효종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송시열을 추종하여 치열한 사색당쟁 속에서 노론과 성쇠를 같이 하였다. 1659년 정언(正言)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대신을 탄핵하여 강직함을 드러냈으며, 1674년 송시열이 유배된 뒤 계속된 탄핵으로 양덕(陽德)으로 귀양 갔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후 1682년 송시열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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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유(聖由). 정몽주(鄭夢周)의 10세손으로, 영장(營將)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정덕징(鄭德徵)[1657~1739]은 조선 후기 효종 대에서 영조 대에 활동한 인물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훈련원주부·판관·서생첨사(西生僉使)·진안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