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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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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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말기 승려 나옹화상 혜근의 법어집과 시집.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은 고려 말기의 승려 나옹화상 혜근(惠勤)[1320~1376]의 글을 제자들이 수집하고 교정하여 총 67장으로 간행한 범어집이며,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은 나옹화상 혜근이 직접 쓴 시를 모은 시집이다. 제자들이 글을 수집하고 교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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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이색이 지은 기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이색(李穡)[1328~1396]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에 전하는 기문으로, 이석지(李釋之)의 은둔 생활을 칭송한 글이다. 고려 말 학자 이석지(李釋之)가 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南谷)에 은거하며 사는 모습과 남곡의 수려한 경관, 이석지와의 교분이 잘 나타나 있다. “용구 동쪽에 남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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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김황이 이석지의 재사인 남곡재의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남곡재 중건기(南谷齋 重建記)」는 이석지의 후손인 이병운(李柄運)의 부탁으로 영남의 대학자 김황(金榥)[1896~1978]이 남곡재의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記文)이다. 이석지(李釋之)는 고려 후기 이성계 일파가 새로운 왕조를 열고자 했을 때 적극 반대하며, 여러 학사들과 두문동에 들어가 불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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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이색이 용인의 남곡으로 떠나는 이석지를 송별하며 지은 한시.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권30에 전하는 작품으로, 원래 제목은 「나이가 동갑인 판서 이석지가 장차 용구현의 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와서 이별을 고함으로 우선 전별의 말을 주고 붓을 놀려 책임을 면하다(同年李判書釋之 將歸龍駒別墅 來告別 且徵贈言 走筆塞責)」이다. 이석지(李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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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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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자의 묘. 이자(李耔)[1480~1533]의 본관은 한산, 호는 음애(陰崖), 시호는 문의(文懿)이며 목은 이색의 후예이다. 이자가 남긴 『음애일록』은 1509년(중종 4) 윤9월부터 시작하여 1516년(중종 11) 12월까지의 기록으로, 당시의 정치상황은 물론이고, 왜구와 교섭한 일, 농사에 관한 옛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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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야(季野). 목은 이색(李穡)의 5세손으로서 증조부는 이숙무(李叔畝), 조부는 지중추원사를 지낸 이형증(李亨增), 외조부는 종사랑(從仕郞) 품계를 지낸 선산(善山) 김관안(金寬安)이다. 부인은 찰방을 지낸 최홍보(崔洪輔)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에 진사로 합격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으며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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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평은(平隱).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仲仁)의 맏아들이다. 이사영(李士穎)[?~1406]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淸州牧使), 안동부사(安東府使), 형조전서(刑曹典書)를 거쳐 1391년(공양왕 3) 밀직사우대언(密直使右代言)에 임명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격살된 후 당여(黨與)로 몰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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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다. 형제로는 전서(全書)를 지낸 형 이사영(李士潁)과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아우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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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곡(南谷).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이송현(李松賢)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경덕재생(慶德齋生)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영천윤씨(永川尹氏) 윤취(尹就)의 딸이다. 이석지(李釋之)는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41년(충혜왕 2)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진사(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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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불린(不磷). 고조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증조부는 제학을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며, 할아버지는 이숙묘(李叔畝)이다. 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어머니는 조아(趙雅)의 딸이다. 부인은 선산김씨로,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아들은 좌참찬(左參贊) 이자(李耔)이다. 이예견은 성종 대에 활약하였다. 승사랑(承仕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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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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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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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상동마을에 있는 이헌규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헌규(李憲珪)는 고려 말 삼은 중의 한 사람인 이색의 후손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음애 이자(李耔)의 후손으로 이 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다. 이헌규는 가세가 몹시 곤궁하였으나 자수성가한 후 낙후한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마을회관과 정자를 건립하고 장학회를 만들어 육영 사업에 공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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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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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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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자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중시조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다. 이곡은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으로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의 대가였다. 이곡의 문하에서 권근·변계량 등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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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거정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던 효우정의 내력을 적은 기문. 『속동문선(續東文選)』권13에 전하는 작품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던 효우정(孝友亭)의 내력을 기록한 기문(記文)이다. 김중호(金仲浩)의 부탁으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지었다. 고려 말 학자 이석지(李釋之)의 손자인 이종검(李宗儉)·이종겸(李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