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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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종철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을 비롯하여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을 갖춘 무덤 양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되는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덤일 뿐만 아니라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의 표석,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그리고 기념물 등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과 산둥[山東] 지역, 일본의 큐슈[九州] 지역 등 동북아시아 일원에 넓게 분포하고 있지만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은 한반도이며, 그중에서도 전라도 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특히 인천광역시 강화군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화순군의 고인돌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진안 지역에서는 방형과 원형의 묘역 시설이 갖추어진 개석식 고인돌이 주로 확인된다. 묘역 시설은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중심으로 네모난 형태나 둥근 형태로 돌을 깔거나 쌓아서 만든 시설로, 규모는 한 변의 길이 혹은 지름이 대략 3~5m 내외이다. 대부분 한 개로 구획된 묘역 시설 내부에는 1기의 무덤방이 축조되고, 각 묘역 시설은 열차 칸처럼 서로 연접하는 형태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고인돌의 형태]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적 특성에 따라 탁자식·기반식·개석식·위석식으로 구분된다. 탁자식은 3~4매의 대형 판석을 지상에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판석형 덮개돌을 올리는 구조로 북방식이라고도 한다. 기반식은 냇돌이나 깬돌로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4~8개의 고임돌을 놓은 후 커다란 바위를 올려 덮는 구조로 남방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개석식은 기반식과 같은 방식으로 무덤방을 만든 후 고임돌을 놓지 않고 바로 덮개돌을 올려 놓는 방식이다. 위석식은 자연석이나 판석을 돌려 무덤방처럼 방형 혹은 원형의 공간을 만든 후 덮개돌을 올려 놓는 구조를 말한다. 진안 지역에서는 대체로 개석식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다.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고인돌의 시작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자생설, 동남아시아에서 해로를 통해 전파되었다는 남방설, 북방의 돌무덤에서 파생되었다는 북방설이 있다. 자생설은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가장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도 가장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실에 근거한다.
남방설은 동남아시아로부터 해로를 통해 도작 문화(稻作文化)와 함께 고인돌이 중국 동북 해안 지방과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고인돌이 평안도·황해도·전라도 등 서해안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고, 남방 문화 요소인 난생 설화의 분포 지역과 고인돌의 분포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북방설은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가 랴오닝 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우리나라의 고인돌이 랴오닝 지방의 돌널무덤에서 변화·발전하였다는 설명이다.
[변천]
고인돌의 출현을 신석기 시대로 올려보는 견해도 있지만 대부분 청동기 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후자의 견해는 다시 나뉘어서 기원전 2000년대 말로 보는 견해, 기원전 1000년대 초기로 보는 견해, 기원전 1000년대 중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기원전 2000년대로 보는 견해는 중국 랴오닝 지방의 고인돌과의 비교를 근거로 하고 있다. 기원전 1000년대 초기로 보는 견해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형성 시기와 연결하여 고인돌의 출현을 설명한다. 기원전 1000년대 중기로 보는 견해는 탁자식 고인돌의 연대 비정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최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시기를 보정한 결과 기원전 11세기~12세기로 보기도 한다. 고인돌이 언제까지 축조되었는가에 관해서는 좁은 놋단검 문화와 덧띠 토기와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기원전 3~2세기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진안 지역에서 조사된 고인돌은 대부분 송국리형 문화 단계인 청동기 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출토되는 청동기 시대 전기 단계의 유물들로 볼 때 중기 이전까지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
진안 용담댐 수몰 지역에서 조사된 고인돌과 돌널무덤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진안 지역 고인돌 사회의 변천은 Ⅰ~Ⅲ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Ⅰ단계는 하나의 묘역 내에 하나의 묘실이 존재하는 단독묘가 축조되는 시기이다. 단독묘는 가족 공동체의 장을 위한 무덤으로서 단독묘의 피장자들은 수평적 관계로 사회적 서열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Ⅱ단계는 3기 내외의 무덤들이 하나의 매장 단위를 이루어 서로 연접하여 축조되고, 다른 무덤들과 달리 독립적인 공간에 조성되는 시기이다. 이 뿐만 아니라 무덤의 형태도 중앙부에 적석을 많이 한 저분구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고인돌은 사회적으로 우월한 집단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연접되는 고인돌은 친연적으로 가까운 자들의 무덤으로서 유·소아까지 부장하는 일종의 가족묘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묘제 변천의 배경으로는 송국리형 문화의 확산이 지적된다.
Ⅲ단계에는 여전히 공동체는 혈연을 기반으로 하지만 무덤의 개인화가 이루어지면서 유력 개인묘가 등장한다. 이 단계의 무덤은 상석·묘역의 규모가 대형화·저분구화되고, 독립된 공간에 축조되며, 제단이 부가적으로 설치된다. 따라서 당시 사회에서 우월한 지위를 지닌 상위 엘리트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위 엘리트의 출현은 다른 무덤들과의 현격한 차별화에 근거하고 있다.
진안 모정리 여의곡 유적의 청동기 시대 취락에서는 Ⅲ단계의 고인돌까지 확인되는 반면, 인근의 유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으로 보아 Ⅲ단계 이전에 사회 조직이 와해된 것으러 추정된다. 여의곡 취락은 정천면 일대의 광대한 충적 대지에 입지한 반면에 수좌동·구곡·안자동의 취락은 안천면의 협소한 계곡에 입지하여 생산 경제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천면의 여의곡 취락은 송국리형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하여 진안 용담댐 일원에서 가장 복잡하고 우월한 사회를 유지했을 것이다.
[발굴 조사]
진안 지역의 고인돌은 진안읍·마령면·백운면·부귀면·상전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 등에 분포하지만, 진안 용담댐 수몰 지역에 분포하는 고인돌만 집중적으로 조사되었을 뿐 대부분은 조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는 1~4차에 걸쳐 41개 유적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고인돌 유적은 1차 조사에서 진그늘 유적[전북 대학교 박물관]·승금 유적[전북 대학교 박물관]·안자동 유적 및 구곡 유적[국립 전주 박물관]이 조사되었다. 2차 조사에서는 모곡 유적·여의곡 유적·월포리 유적·안자동 유적[이상 전북 대학교 박물관]·수좌동 유적[국립 전주 박물관]이 조사되었으며, 3차 조사에서는 여의곡 유적·풍암 유적[이상 전북 대학교 박물관]이, 4차 조사에서는 망덕 유적[호남 문화재 연구원]이 조사되었다.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정천면에는 모정리 진그늘 유적·모정리 모곡 유적·모정리 망덕 유적·모정리 여의곡 유적이, 안천면에는 삼락리 승금 유적·삼락리 안자동 유적·삼락리 풍암 유적·삼락리 수좌동 유적·삼락리 구곡 유적이, 상전면에는 월포리 유적이 각각 분포한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사 이전에 주택 조성이나 경작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고인돌이 훼손되거나 멸실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인돌 상석이 열을 지어 분포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용담댐 수몰 지역에서 조사된 고인돌들은 대부분 방형계와 원형계의 적석 시설을 갖추고 있고, 적석 시설 중앙부나 한 변에 편중되어 무덤방이 축조되어 있다. 특히 단독으로 축조되거나 단독의 고인돌이 서로 연접하면서 열을 지어 조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형태의 고인돌은 진안 지역과 거창·합천 지역으로 이어지는 내륙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남해안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진안군에서 조사된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전기 단계의 것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청동기 시대 중기인 송국리형 문화 단계에 집중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고인돌 내부에서 출토되는 민무늬토기와 돌칼·돌화살촉·돌도끼 등의 간석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현황]
진안 지역에서는 진안읍·마령면·백운면·부귀면·상전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에 걸쳐 63곳에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지표 조사를 통해 발견된 것으로, 개석식 고인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조사된 고인돌은 대부분 개석식 고인돌이지만 돌을 깔거나 쌓아서 만든 묘역 시설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고인돌은 진안군을 포함하는 전라북도 동부 내륙 지역과 경상도 및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개석식 고인돌 외에도 기반식 고인돌이 일부에서 확인되며, 탁자식 고인돌은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 단 1기가 유사한 형태로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안군에 있는 고인돌 유적 중 특히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고인돌 덮개돌을 채석장으로부터 무덤 쪽으로 이동시켰던 운반로와 원형의 묘역 시설에 방형의 제단을 갖춘 지배자의 고인돌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전라북도의 동부 산간 지역에는 고인돌을 축조했던 청동기 시대의 거점 취락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