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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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丙夫里丙夫-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병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언 |
시작 시기/일시 | 임진왜란 시기 - 마을 형성 및 동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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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삼신바위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570-1 |
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양력 8월 15일 새벽 |
신당/신체 | 당목|삼신바위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병부리 병부마을에서 양력 8월 15일 새벽에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청송군 파천면 병부리 병부마을의 전신인 병부동은 동쪽과 서쪽의 두 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서쪽의 마을은 병부리에 포함되었으며, 동쪽의 마을은 중평리에 포함되었다. 병부리 병부마을사람들은 매년 양력 8월 15일 새벽에 중평리쪽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당목과 삼신바위에서 동제를 지낸다. 1990년대까지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동제를 지냈으나, 그 이후로는 여름철에 풋구와 겸하여 간소하게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병부마을 동제는 마을의 형성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마을이 형성된 무렵, 무언가 모실 것이 필요하다고 하여 당을 모시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병부마을은 임진왜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온 월성박씨(月城朴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들이 개척하였다. 과거에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동제를 지냈으나 2000년대 이후 양력 8월 15일 새벽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파천면 병부리 병부마을의 신체(神體)는 중평리쪽 마을에서 동쪽으로 350m 정도에 있는 당목과 바위이다. 당목의 수종은 느티나무로 수령은 약 280년이고, 높이 15m, 둘레 4m 정도이다. 당목의 신격(神格)은 마을 사람들이 ‘당할배’라고 부르는 골맥이할아버지이다. 또 다른 신체인 삼신바위는 당나무 바로 곁에 있다. 둘레는 4m 정도이고 표면에는 이끼가 끼어 있다. 신격은 삼신할머니로 자손이 번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절차]
음력 정월 8일 무렵에 동회(洞會)를 열어 깨끗하고 평판이 좋은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고 있다. 음식을 마련하고 준비를 돕는 도가도 제관과 같은 조건으로 선정하고 있다. 제관과 도가는 동제를 지내기 사흘 전부터 술, 담배, 육식을 금해야 한다. 제물(祭物)은 제를 지내기 하루 전날 저녁에 청송장에 가서 구입하고 있다. 이때 상인과 물건값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제물로는 백편[백설기], 명태 혹은 대구, 밤·대추·배 등의 과일을 올린다. 국과 밥, 감주(甘酒)는 두 신격(神格)을 위해 두 그릇씩 진설한다. 과거에는 두 곳의 제당(祭堂)에 별도로 제상(祭床)을 차렸으나, 현재는 두 제당 사이에 제상을 차려 함께 제를 지내고 있다.
제일(祭日)에 제관은 당 주변을 청소하고 불을 밝힌 다음 의관을 갖추어 제를 올린다. 제의(祭儀)는 유교식 절차를 따른다. 당나무와 삼신바위 사이에 상을 진설하고 강신(降神)을 한 다음 재배(再拜)를 하고 잔을 올린다. 이후 다시 재배한 뒤 소지(燒紙)를 올리는 순으로 진행된다. 축은 따로 하지 않으며, 소지는 마을의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비는 대동소지와 집안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성씨별 소지, 그리고 가축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잘 크고 새끼를 많이 치기를 비는 가축 소지를 순서대로 올린다.
[현황]
병부마을은 정월대보름 자정에 두 곳의 제당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2000년대부터는 풋구와 겸하여 양력 8월 15일 새벽에 지낸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동제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병부마을 주민들은 동제를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