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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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基里碧珍李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벽진 이씨 판서공파 집성촌.
[개설]
신기리 벽진이씨 집성촌은 신기리 감곡마을에 있는 벽진이씨 세거지이다. 벽진이씨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신라 때 벽진태수를 지낸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한다. 파천면 신기 2리 감곡마을은 과거에 박씨와 강씨, 임씨 등 다양한 성씨가 세거하였으나, 현재는 벽진이씨 판서공파(判書公派) 10가구가 세거하고 있다.
[명칭 유래]
감곡마을은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가람실’이라 불렀으며, 한때 강씨가 많이 산다고 하여 ‘강씨골’이라 불렀다. 이후 다양한 성씨가 거주하게 되어,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라는 뜻의 ‘감곡(甘谷)’으로 부르게 되었다. 종이를 만드는 지소(紙所)가 있다고 하여 ‘지통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감곡마을은 500여 년 전 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약 350년 전에는 강씨가 입향하여 세거지를 이루었으며, 200여 년 전에는 임씨가 입향하였다. 벽진이씨가 입향한 것은 그 이후이다. 감곡마을은 전통 한지를 생산하던 지소가 있던 곳으로, 청송한지장 기능 보유자 이자성은 벽진이씨 31세손 이석일(李錫一)로부터 7대째 가업을 이어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감곡마을에서는 1960년대까지 한지를 생산하였으나 전통 한지의 수요가 감소하여 모든 제지공장이 문을 닫고, 현재는 송강리로 이주한 청송한지장 기능 보유자 이자성이 청송한지의 맥을 잇고 있다.
신기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벽진이씨가 16가구 거주하였고, 1992년에는 그 수가 10가구로 줄었으나, 2017년 현재도 10가구를 유지하고 있다.
[자연환경]
감곡마을은 신기천을 사이에 두고 신기1리 새터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약 200여 년 전 입향했던 임씨들이 심은 것이다. 마을은 동쪽과 서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릉지 위에 형성되었는데, 두 산 사이의 계곡을 따라 마을과 농경지가 늘어서 있다. 마을의 북서쪽으로는 파천면 송강리가 있다.
[현황]
감곡마을은 한때 86가구 규모였으나 2017년 현재는 34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벽진이씨는 10가구가 있다. 감곡마을의 벽진이씨 관련 유적은 재실인 삼체정(三棣亭)이 있다. 삼체정은 벽진이씨 원천(源川) 이석일(李錫一), 감천(甘川) 이재일(李在一), 석천(石川) 이향일(李享一) 삼형제의 재실 겸 정자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