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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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周鎬 |
영어공식명칭 | Lee Juh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이주호 출생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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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이주호 광복단 논산지단장으로 군자금 모집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 이주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0년 - 이주호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오번리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오번리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독립유공자 5묘역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주호(李周鎬)[?~1921]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오번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간도(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광복단(光復團)의 국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단의 국내 활동은 1920년 배일사상을 갖고 있던 김국경(金國景)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김국경은 1920년 광복단 단장인 박성빈(朴聖彬)의 지시로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즉 삼남 지방에서 군자금 모금과 더불어 청년 독립군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국내로 잠입하였다. 경성에서 대소관공리(大小官公吏)를 처단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20년 10월 9일 정무총감의 공주 시찰 소식을 듣고 정무총감을 처단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김국경은 공주에서 박재옥(朴在玉)을 광복단의 충남지부장으로 선임하여 함께 정무총감 처단의 기회를 노렸으나, 평양에서 무기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주호는 광복단의 논산지단장에 임명되어 박재옥, 강영의(姜榮義) 등 충청남도 지역 광복단 단원들과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는 협박문 8통을 등사하여 논산군 광석면 윤구병(尹龜炳) 외 2명에게 발송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 납부 명령서를 받은 논산군 성동면의 부호 조동시(趙東始)에게 군자금 560원을 징수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주호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으며, 1921년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이주호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주호의 공적을 기려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