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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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吉和 |
영어공식명칭 | Bak Gilhw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12월 12일 - 박길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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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2년 - 박길화 삼학서원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박길화 군자금 모집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4월 1일 - 박길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52년 6월 12일 - 박길화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박길화 대통령 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박길화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용당리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길화(朴吉和)[1872~1952]는 1872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1912년 용당리에 삼학서원(三學書院)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사상 교육에 전념하였다고 전한다.
박길화와 같은 마을 출신인 강철구(姜鐵求)는 1921년 10월, 동생 강용구(姜鎔求)의 집을 거점으로 부호의 집을 은밀히 방문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박길화는 군자금 모집 활동에 호응하여 박창규, 박남규(朴南圭), 이기범(李基範)과 함께 독립군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의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강철구가 가지고 있던 공채를 모두 처분하고 다시 만주로 가려고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모두 체포되었다. 박길화는 1923년 4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52년 6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길화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