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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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道熙 |
영어공식명칭 | Kim Dohe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출생 시기/일시 | 1867년 8월 23일 - 김도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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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김도희 서울 경신중학교 교사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김도희 청년학우회 회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김도희 서간도 한인 집단 이주 계획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8월 - 김도희 주진수(朱鎭洙) 등과 독립운동 결의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9월 - 김도희 서간도 이주자 모집 요청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10월 - 김도희 서간도 이주자 모집 요청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7월 22일 - 김도희 경성지방법원에서「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선고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24년 9월 25일 - 김도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김도희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내동리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 |
거주|이주지 | 서울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서울 - 서울특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경신중학교 교사|청년학우회 회장|연희전문학교 교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도희(金道熙)[1867~1924]는 1867년 8월 23일에 부여군 임천면 내동리[현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다가, 서울로 상경하여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애국 계몽 운동의 대표적인 단체인 신민회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서울 경신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한문을 가르치는 한편 청년학우회를 발기하여 조직하고 회장을 역임하였다. 1910년 양기탁(梁起鐸)과 임치정(林蚩正) 등이 추진하는 서간도에 독립군 기지를 세우고 한인을 집단 이주시키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1910년 8월에는 주진수(朱鎭洙) 등과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김도희는 1910년 9월과 1910년 10월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이승훈(李承勳) 등에게 서간도 이주자를 모집할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1910년 12월 20일경 서울 양기탁의 집에 모여서 안태국(安泰國), 주진수 등과 함께 조선 13도에 각 1명씩 주임을 두어 서간도 이주자 모집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1년 7월 22일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가세가 빈한해져 신앙에 의지하며 조선 사적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후 연희전문학교 한문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1924년 9월 25일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