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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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存吾 |
영어공식명칭 | Lee Johnoh |
이칭/별칭 | 순경(順卿),석탄(石灘),고산(孤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안승환 |
출생 시기/일시 | 1341년 - 이존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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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60년 - 이존오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66년 - 이존오 우정언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371년 - 이존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사후 - 이존오 성균관대사성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519년 - 이존오 정려 중건 |
출생지 | 석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
거주|이주지 | 석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
사당|배향지 | 고산서원 -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 |
사당|배향지 | 의열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29번길 11-33[동남리 산3] |
사당|배향지 | 충현사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 |
사당|배향지 | 충현서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성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관직|경력 | 우정언|장사감무 |
[정의]
고려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이존오(李存吾)[1341~1371]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내시흥위위장사(內侍興威衛長史) 이예(李芮)이고, 할아버지는 봉상대부감찰사장령(奉常大夫監察司掌令) 이손보(李孫寶)이고, 아버지는 승봉랑사재시승(承奉郞司宰寺丞) 이길상(李吉祥)이다. 아들은 좌명공신이자 태종 묘정배향공신인 이래(李來)이다.
[활동 사항]
이존오는 1341년(충혜왕 복위2)에 공주목 석탄(石灘)[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한 뒤 수원(水原)에 있던 경기관찰도(京畿觀察道)의 서기(書記)를 거쳐 사관(史官)에 발탁되었다.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박상충(朴尙衷), 이숭인(李崇仁), 김구용(金九容), 김제안(金齊顔) 등과 가까이 지내며 하루도 빠짐없이 경서를 강론하였다. 이후 감찰규정이 되었고, 1366년 우정언이 되었다.
당시 신돈(辛旽)의 횡포를 참지 못한 이존오는 인척인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정추와 함께 상소하여 신돈을 탄핵하다가 왕이 노하여 이존오를 순군옥에 하옥하고 국문하게 하였다. 이후 이색(李穡) 등이 옹호하여 극형을 면하고 장사(長沙)[현 전라북도 고창군]의 감무(監務)로 좌천되었다.
그 뒤 공주목 석탄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고 1371년 울분 속에 지내다가 죽었다. 이존오가 세상을 떠난 지 석 달 만에 신돈이 처형당하였다. 왕은 이존오의 충성을 생각하여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추증하였고, 아들 이래(李來)에게는 장거직장(掌車直長)의 벼슬을 내렸다.
[학문과 저술]
신돈의 전횡을 풍자한 내용의 시조 1수를 비롯하여, 3수의 시조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저서로는 『석탄집(石灘集)』 2권이 있다. 『석탄집』은 10세손 이유경(李裕慶)의 후기 및 이행민(李行敏)의 발문으로 보아 1726년(영조 2)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존오가 세상을 떠난 뒤 350여 년이 지나 간행되었기 때문에 따로 전해진 것은 없고, 『동문선(東文選)』과 『고려사(高麗史)』 등에 실린 11수의 시를 비롯하여 신돈을 탄핵한 「논신돈소(論辛旽疏)」를 옮겨 적은 것이 상권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정몽주·임제(林悌)·이이(李珥) 등의 후대인들이 이존오를 추모하여 지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묘소]
이존오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대덕산 자락에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실전되었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자왕리 384-3에 이존오 정려가 있다. 정려가 세워진 시기는 미상이며 1519년(중종 14)에 중건되었다. 이존오는 사후 성균관대사성으로 추증되었고 부여의 의열사(義烈祠)를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 고산서원(孤山書院)[1871년(고종 8) 훼철]과 충청남도 공주 충현서원, 전라북도 고창 충현사(忠賢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