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43
한자 尹揩
영어공식명칭 Yoon Gae
이칭/별칭 원례(元禮),치암(痴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승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4년연표보기 - 윤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윤개 식년시 진사 합격
몰년 시기/일시 1663년연표보기 - 윤개 사망
출생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파평(坡平)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가계]

윤개(尹揩)[1634~1663]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원례(元禮), 호는 치암(痴菴)이다. 대사성(大司成) 윤탁(尹倬)의 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효렴(孝廉) 윤창세(尹昌世)이고, 할아버지는 전부(典簿) 윤희(尹熺)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 오로정(五老亭) 윤봉거(尹鳳舉)이고, 어머니는 무안 박씨(務安 朴氏)이다. 부인은 귀천(歸川) 이정기(李廷夔)의 딸 한산 이씨(韓山 李氏)이다. 소론의 영수인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6촌 동생이다.

[활동 사항]

윤개는 부여 출신이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이다. 어릴 때부터 종숙 윤선거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657년(효종 8) 식년시 진사에 합격하였다. 성품이 돈독하고 인자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에 성심을 다하였다. 학문 연구에도 독실하여 교우들 사이에서 명망이 두터웠다.

이선(李選)은 일찍이 윤개를 가리켜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의 ‘기화요초(琪花瑤草)’로 칭송하였고, 또 상서로운 기린과 봉황이라는 뜻의 ‘상린서봉(祥麟瑞鳳)’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윤개는 30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육촌형 윤증은 윤개가 죽은 뒤 제문을 지었는데, 문집 『명재유고(明齋遺稿)』에 제문이 실려 있다. 윤증은 제문에서 윤개를 “밝은 지혜를 지녔고, 온화하고 공손한 데 뜻을 두었고, 효제(孝悌)의 도리를 힘써 행하였다. 분수를 지키며 염치 있고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신중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집의 문집인 『신독재전서(愼獨齋全書)』 문인록에 ‘윤개의 자는 원례이고, 관향은 파평이다. 전부 윤희의 손자이며, 진사(進士)이다’라고 실려 있어 김집의 문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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