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30
한자 洪允成
영어공식명칭 Hong Yunseong
이칭/별칭 수옹(守翁),영해(領海),위평(威平),인산군(仁山君),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홍우성(洪禹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25년연표보기 - 홍윤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50년 - 홍윤성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51년 - 홍윤성 사복시주부 역임
활동 시기/일시 1454년 - 홍윤성 정난공신 2등 녹훈
활동 시기/일시 1455년 - 홍윤성 예조참의 역임
활동 시기/일시 1456년 - 홍윤성 예조참판에제수되고 인산군에 책봉
활동 시기/일시 1457년 - 홍윤성 예조판서 역임
활동 시기/일시 1467년 - 홍윤성 우의정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홍윤성 영의정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71년 - 홍윤성 좌리공신 1등 녹훈
몰년 시기/일시 1475년연표보기 - 홍윤성 사망
묘소|단소 은산 홍윤성 묘 및 신도비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경둔리 산56-1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회인(懷仁)
대표 관직 영의정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홍윤성(洪允成)[1425~1475]의 본관은 회인(懷仁)이며, 자는 수옹(守翁), 호는 영해(領海)이다. 초명은 홍우성(洪禹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연보(洪延甫)이고, 할아버지는 홍용(洪容)이다. 아버지는 홍제년(洪齊年)이다. 첫 번째 부인은 남육(南陸)의 딸 남씨(南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김자모(金子謀)의 딸 고령 김씨(高靈 金氏)이다. 아들은 홍진(洪珍)이다.

[활동 사항]

홍윤성은 1450년(문종 즉위년)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부정자에 선임되었을 때 무재(武才)가 있어 사복직(司僕職)을 겸하였다. 1451년(문종 1) 한성참군을 거쳐 통례문봉례랑과 사복시주부를 역임하였다. 문종이 사망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에게 권람(權擥)을 추천하면서 나라가 위태로우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1455년(단종 2) 소윤(少尹)을 거쳐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454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성공한 뒤에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홍윤성은 1455년(세조 즉위년) 예조참의에 임명되고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1456년 예조참판이 되었고, 인산군(仁山君)에 책봉되었다. 1457년 예조판서가 되었고, 1460년 모련위(毛憐衛)의 여진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부장(副將)으로 토벌에 참여하였다. 1467년 우의정을 거쳐 1469년(예종 1)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사은사(謝恩使)로 북경에 다녀온 뒤 영의정에 올랐다. 1470년(성종 1) 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에 책봉되었고, 1471년 구성군(龜城君)을 숙청하여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홍윤성은 용모가 크고 힘이 장사였으나 재물을 탐하고 횡포하였고, 특히 홍산(鴻山)에 땅을 많이 마련하고 수많은 종을 부리며 심하게 학대하고 함부로 죽이기까지 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세조가 온양(溫陽)에 행차했을 때 사족(士族)의 부인 윤씨(尹氏)가 남편이 홍윤성의 종에게 살해되었음을 호소하니 그 종을 처벌하고 홍윤성은 지난날의 공이 크다 하여 처벌은 하지 않았다. 또한 같은 고을의 사족(士族) 김자모(金自謀)의 딸을 강제로 취하여 장가들었다고 한다. 홍윤성은 1475년(성종 6) 사망하였다.

[묘소]

홍윤성의 묘소는 부여군 은산면 경둔리 산56-1에 있다. 은산 홍윤성 묘 및 비라는 명칭으로 2001년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홍윤성은 사망한 뒤 위평(威平)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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