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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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이기성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쇠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철기 시대는 고고학 시대 구분 중의 하나이다. 광의의 철기 시대는 인류가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철기 시대를 대신하여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전 100년 정도까지의 시기를 초기 철기 시대(初期 鐵器 時代), 기원전 100년에서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原三國時代)로 부르고 있는데 이를 합쳐 철기 시대(鐵器 時代)로 하자는 주장도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도 철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부여 송국리 유적과 나복리 유적이 있고, 유물로는 토기 등이 있다.
[유적]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은 청동기 시대의 부여 송국리 유적과 더불어 초기 철기 시대의 청동기 일괄 유물이 출토되는 구봉리 돌널무덤, 합송리 돌널무덤, 연화리 석관묘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청송리 유적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정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정식 발굴 조사로 확인된 초기 철기 시대의 유구는 나복리 유적의 주거지 1기와 원문리 유적의 움무덤 1기뿐이다.
나복리 유적의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말각방형으로 추정되며 장축 460㎝, 단축은 불명, 잔존 깊이 14㎝ 정도에 유물로는 시루 조각, 민무늬 토기 조각, 석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원문리 유적의 움무덤은 조사 범위 경계선에서 확인되어 일부만 조사되었는데, 조사된 규모는 노출 길이 60㎝, 너비 약 55㎝, 깊이 30㎝이다. 내부에서 원형덧띠토기 1점과 검은간토기 바닥 조각 1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청송리 유적에서는 토광목관묘 1기가 확인되었는데, 유구의 절반 이상이 파괴된 상태로 조사되었음에도 세형동검 1점, 칼자루끝장식 2점, 청동꺾창 1점, 청동투겁창 4점, 여러 꼭지 잔무늬거울 1점, 청동 방울1점, 청동 도기 1점, 청동 지우개 1점, 청동 끌 2점 등의 청동기와 대롱옥 14점, 간돌살촉 3점 등 총 31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렇듯 충청남도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의 수는 매우 적지만,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은 금강 중류 및 하류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문화 유입 양상을 설명하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