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현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350
한자 扶餘縣邑誌
영어공식명칭 A Town Chronicle Of Buyeo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승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편자 부여현
권책 1책 17장[규10765]|1책 11장[규17376]
규격 가로 19㎝, 세로 29.6㎝[규10765]|가로 21.4㎝, 세로 30.1㎝[규17376]

[정의]

조선 후기 편찬된 충청도 부여현의 읍지.

[개설]

『부여현읍지(扶餘縣邑誌)』충청도 부여현의 연혁, 인문 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이다. 편찬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여현읍지』[규10765], 『부여현읍지』[규17376] 2책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부여현읍지』[규10765]는 영조(英祖)[1694~1776] 시기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부여현읍지』[규17376]는 정조(正祖)[1752~1800] 시기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편찬 시기 또한 각각 영조 대와 정조 대로 추정하고 있다.

[형태/서지]

『부여현읍지』[규10765]는 1책 17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사본으로 지도가 채색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29.6㎝, 세로 19㎝이다. 『부여현읍지』[규17376]는 1책 1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사본 크기는 가로 30.1㎝, 세로 21.4㎝이다.

[구성/내용]

『부여현읍지』는 다양한 항목을 설정하여 18세기 후반 부여 지역의 여러 면모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읍지에 기록된 호구(戶口)와 전결(田結)의 수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부여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읍세를 지닌 고을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읍지를 통하여 부여의 건치연혁, 군명, 관직, 거주민 성씨, 산천, 풍속, 면리 구성, 호구수, 창고, 단묘, 사찰, 관청, 도로, 교량, 제언, 조세 내역, 역원, 형승, 누정, 고적, 묘소, 토산물, 전결수, 조세 내역, 관아 재정, 지역 인물 관련 정보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후대에 편찬된 『부여현읍지』[규17376]는 『부여현읍지』[규10765]를 저본으로 하여 약간의 내용을 증보한 것으로 보인다. 『부여현읍지』[규10765] 방리(坊里) 조에서 각 면의 마을 단위로 파악되어 있던 호구수가 『부여현읍지』[규17376]에는 인호(人戶) 조로 따로 독립되어 있다. 또 『부여현읍지』[규10765]에 실려 있는 부여현 지도가 『부여현읍지』[규17376]에는 실려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부여현읍지』는 사회 경제 부문의 정보가 한층 풍부한 조선 후기 읍지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또한 현존하는 조선 후기 부여 읍지 가운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수록본을 제외하면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읍지이며, 이후에 나온 읍지들의 저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정조 대 이후에 나온 부여 읍지들은 『부여현읍지』와 구성과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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