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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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官北里 |
영어공식명칭 | Gwanbu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전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관북리의 지명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관아가 있었던 지역의 북쪽이기 때문에 ‘관북리’로 불리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백제 소부리[사비] 지역으로 사비 시기에는 왕궁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는 671년(문무왕 11) 소부리주[사비주], 686년(신문왕 6) 소부리군, 경덕왕 때 부여군 지역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부여군과 부여현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관아의 북쪽이다. 조선 후기에는 부여현 현내면(縣內面)에 속한 지역으로, ‘관북리’라는 지명도 존재하였다. 조선 말에는 부여군 현내면 구아리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관북리와 홍문리, 흑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남도 부여군 현내면 관북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현내면이 부여면으로 개칭되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관북리로 개편되었다. 1960년 부여면이 부여읍으로 승격되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대부분의 지대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부소산의 남쪽 산자락 끝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관북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북서부에 있는 부여읍의 22개 법정리 가운데 하나이며, 부여읍의 북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관북리, 서쪽으로 구아리, 남쪽으로는 구아리·동남리, 북쪽으로는 쌍북리와 접하여 있다. 행정리로는 관북리가 있다.
2023년 5월 현재 면적은 0.22㎢ 이며, 인구는 261가구, 511명[남자 247명, 여자 264명]이다. 관북리는 시가지의 발달로 농업보다는 상업과 관광업을 주 소득원으로 삼고 있다. 마을 내부에는 대향로로터리에서 부여 관내로 진입할 수 있는 성왕로가 지나간다. 관북리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가운데 하나인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여 부소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보물]과 부여 사택지적비(扶餘 砂宅智積碑)[보물]가 발굴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