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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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佳增里 |
영어공식명칭 | Gajeu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전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가증리(佳增里)’ 명칭은 조선 후기부터 불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호구총수(戶口總數)』 등에 몽도면 소속으로 한자를 달리하여 가증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증리는 부여군 몽도면의 동남쪽으로부터 가증리의 중심을 지나 서남쪽으로 흘러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냇물인 가징개 옆에 있기 때문에 ‘가징개’ 또는 ‘가증’이라고 불린 데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백제 소부리[사비] 지역으로 통일 신라 시대에는 671년(문무왕 11) 소부리주[사비주], 686년(신문왕 6) 소부리군, 경덕왕 때 부여군 지역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부여군과 부여현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부여현 몽도면(蒙道面), 조선 말에는 부여군 몽도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현내면과 대방면, 몽도면이 병합되면서 분대리가 가증리에 병합되어 충청남도 부여군 현내면 가증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현내면이 부여면으로 개편되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가증리로 개편되었다. 1960년에 부여면이 부여읍으로 승격되면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가증리 대부분은 평탄한 지형이다.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는 금강이 흐르며, 소하천으로는 가증천(佳增川)이 있다.
[현황]
가증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북서부에 있는 부여읍의 22개 법정리 가운데 하나이며, 부여읍의 북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상금리·송곡리, 서쪽으로 정동리와 금강, 남쪽으로 용정리, 북쪽으로 자왕리와 인접하여 있다. 행정리는 가증1리, 가증2리가 있다. 자연 마을은 가증, 분터골, 새터가 있다.
2023년 5월 현재 면적은 1.93㎢이며, 인구는 127가구, 219명[남자 111명, 여자 108명]이다. 교통로는 마을 내부에 가증로와 삼충로가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1915년에 확인된 가증리 유적이 있는데,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돌널무덤이 나타났다. 돌널무덤에서 간돌칼과 돌촉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