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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30016
한자 白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卷二十九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대학로 134[삼가동 470]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종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348년연표보기 - 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편찬
간행 시기/일시 1348년연표보기 - 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1988년 12월 28일연표보기 - 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보물 제978호로 지정
소장처 용인 대학교 박물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대학로 134[삼가동 470]
성격 불경
권책 7권 7첩
행자 6행 17자
규격 14.7㎝[가로]|41.2㎝[세로]
권수제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九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978호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불교 경전.

[개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기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법화경(法華經)』과 함께 한국 불교 사상의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주본 권29는 1988년 12월 28일 보물 제978호로 지정되었다.

[저자]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한 주본 80권 가운데 제29권의 내용을 흰 종이에 금색 글씨로 옮겨 적었다. 실차난타는 695년 『화엄경』의 산스크리트본을 뤄양[洛陽]으로 가져다가 보리류지(普提流志)와 의정(義淨) 등과 함께 80권짜리 『신역(新譯) 화엄경』을 완역한 데 이어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문수수기경(文殊授記經)』 등 19부도 한역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화엄경』은 991년(성종 10) 북송(北宋)에서 개보판 대장경으로 간행되어 고려에 수입되었다. 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는 권말이 결실되어 발원문의 여부를 알 수 없으나, 동질의 백지 금자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의 발원문에 “대원지정 팔년 무자사월일 공덕주 삼지 정사 삼중 대신 덕성 부원 대군 기철지(大元至正八年戊子四月日功德主㕘知政事三重大臣德城府院大君奇轍誌)”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기철(奇轍)에 의해 1348년(충목왕 4) 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41.2㎝, 가로 14.7㎝이다. 백지에 금니로 그린 변상도가 있고 경문도 금자로 썼다. 표지는 갈색의 염색지에 금니로 장방형의 경제란을 그려 놓고 금자로 경제를 썼으며 화문과 테두리는 금니로, 배경이 되는 덩굴무늬는 은니로 여백 없이 빼곡히 그려졌다. 절첩본으로 금니 계선을 긋고 한 면에 6행 17자의 경문을 정갈한 해서로 썼다.

[구성/내용]

『화엄경』 39품 가운데 제25 십회향품의 제7 회향이다. 회향이란 보살이 닦은 공덕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뜻이다. 보살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해 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탐내지 말아야 하며 차별심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백지 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는 최근까지 15세기 초에 조성된 사경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하였으나 이 사경과 같은 한 질의 사경으로 보이는 작례들과 발원문이 알려지면서 1348년 제작된 고려 시대 사경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4세기 말 조성되었던 고려 시대 사경과는 달리 경전의 크기가 매우 큰 편에 들어가고 있으며 표지와 변상도에 그려진 화풍이나 문양들이 동시대의 사경과 차이가 있다. 또한 발원자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친원 세력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고려 시대 사경의 전형적인 형태나 화풍이 아닌 당시 원의 집권 세력의 미적 요소가 가미된 사경으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