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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542
한자 貢稅洞遺物散布地
영어음역 Gongse-dong Yumul Sanpoji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in Gongse-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630구|162전|291전|324-2전|81전|602유 일원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상익
[상세정보]

[정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개설]

공세동 유물산포지는 6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630구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1, 162전 일대를 공세동 유물산포지2, 29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3, 324-2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4, 8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5, 602유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6으로 구분한다.

[위치]

공세동 유물산포지1은 국지도 23호선기흥초등학교의 지점에서 분기되어 공세천과 나란히 개설된 도로를 따라 1㎞정도 가면 효렴사가 있다. 유적은 효렴사 북동편 산사면 일대이다. 유물산포지2는 기흥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큰말의 동편 골짜기에 형성된 구릉사면에 있다. 유물산포지3은 기흥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큰말의 북쪽으로 삼성중앙연구소 남동쪽 건너편의 구릉 능선 일대이다.

공세동 유물산포지4는 기흥초등학교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신갈 방향으로 동쪽으로 분기되는 도로를 따라 메주골 방향 북쪽으로 조성된 밭 경작지 일대이다. 유물산포지5는 신갈저수지와 접하는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산포지6은 기흥저수지 유원지 조성 사업부지 가운데 일부로, 주변이 밭과 민가로 둘러싸여 있다.

[형태]

공세동 유물산포지1은 조사 당시 수기의 민묘가 조성되어 있었고, 주변 일대는 밭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유물은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산포되어 있지만, 경사가 완만해지는 밭 경작지 일대에서 매우 높은 산포도를 보인다.

공세동 유물산포지2는 구릉 사면의 상단부가 기흥-고매 간 도로 확·포장 공사로 대부분이 절토된 상태였으며, 하단부는 논과 밭으로 경작되는 지역인데, 유물 밀집도는 경사면이 높고 정상부는 낮은 편이다. 주요 유물산포지는 벧엘어린이집과 연결된 구릉상에 조성된 밭 경작지 일대이다.

공세동 유물산포지3은 조사 당시 유적을 관통하여 기흥-고매 간 도로 확·포장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주요 유물산포지역은 능선의 9부 정도 되는 지역이며, 밭 경작지로 조성된 부분이다. 유물산포지4는 현재 용인 공세지구 복합단지 개발사업으로 인해 거의 소멸되었다.

공세동 유물산포지5는 서쪽의 신갈저수지와 나란히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은 형태이며, 수채의 민가와 밭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현재 전원주택 단지 개발로 인해 일부만 남아 있다. 유물산포지6은 밭과 민가 담 사이에 공세리 오층석탑과 불두가 유실된 불상이 있다. 불상이 위치한 곳은 고려 때 ‘안양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출토유물]

공세동 유물산포지1에는 조선시대의 도·자기편이 주류를 이루고 약간의 기와편이 있으며, 고려시대 연질 호류편들도 소량 확인된다. 공세동 유물산포지2에서는 삼국시대의 회청색 경질 토기편 약간과 다량의 고려·조선시대의 도기·자기편 등이 채집되었다.

공세동 유물산포지3의 채집 유물은 고려·조선시대의 도기편·자기편·기와편들이며, 산포 면적에 비해 매우 높은 집중도를 보인다. 유물산포지4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도기·자기와 상당수의 기와편들 채집되었는데, 대체로 구릉 하단부의 밭 경작지 일대의 좁은 범위에 집중되어 있다.

공세동 유물산포지5의 유물은 구릉 전반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저수지 방향의 사면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채집되는 유물은 고려시대의 어골문 기와편들과 조선시대의 도·자기편들이 많다. 유물산포지6은 현재 경작되고 있는 밭의 지표상에서 다량의 와편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공세동 유물산포지1은 입지와 채집 유물로 보아 산사면 하단부에 고분군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유물산포지2는 유적의 입지로 보아 고분군이 부존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세동 유물산포지 3과 4는 입지와 채집되는 유물들로 보아 조선시대 생활 유적이 부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세동 유물산포지5는 고려시대 이후 생활 유적이 부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유물산포지6은 지형 여건과 수습 유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이르는 사찰이나 생활 유적, 분묘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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