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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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옥형과 아들 정응두의 신도비. 정옥형은 1513년(중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대사간,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힘썼으며, 당시 김안로의 권세가 높아지자 조정을 떠나 외지를 돌며 민심을 두루 살피기도 하였다. 1544년(중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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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의 남춘희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의 초상화. 남구만 초상은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파담마을에 사는 남구만의 후손인 남춘희가 소장하고 있다. 본래 남구만 초상은 모두 5본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충청도 해미(海美) 영당(影堂)에 임진년(壬辰年)에 봉안하였다는 초상은 실전되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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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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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도일의 초상화. 오도일 초상은 1703년 울진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위패를 배향하면서 모사하였던 초상화로 추정된다. 이후 1864년(고종 4) 고산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철향될 때 용인 가묘의 영당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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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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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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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백첨(伯瞻), 호는 석음와(惜陰窩). 호는 배우는 데 힘쓰고 시간을 아껴 매사에 부지런히 하라는 뜻으로 송시열이 지어주었다 한다. 고조부는 증직제학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증조부는 증집의 정선군수 이영인(李榮仁), 조부는 증좌승지 이사익(李士益),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이후망(李堠望)이다. 송시열과 동향으로 송시열의 자손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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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추(士秋), 호는 귀락당(歸樂堂)·행호거사(杏湖居士)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된 중부(仲父) 이흡(李翕)의 후사가 되었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효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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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우(士優), 호는 동원(東園). 증조부는 정옥형(丁玉亨)이며, 조부는 정응두(丁應斗), 외조부(外祖父)는 한경상(韓景祥)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정윤복(丁胤福)이다. 1601년(선조 34)에 진사(進士)가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정언(正言)·수찬(修撰)·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