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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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思容 |
영어음역 | Hong Sayong |
영어의미역 | Hong Sayong |
이칭/별칭 | 노작,소아,백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인섭 |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시인.
[개설]
홍사용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태어났으나 성장기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머물며, 휘문의숙에 입학하기 전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에 휘문의숙을 졸업하였는데, 기미독립운동 당시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7년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부위를 지낸 홍철유(洪哲裕)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 한식(韓植)이다.
[활동사항]
박종화(朴鍾和)·정백 등 휘문의숙 교우와 함께 유인물 「피는 꽃」과 『문우(文友)』를 창간한 것을 비롯하여, 재종형인 홍사중(洪思中)을 설득하여 문화사(文化社)를 설립, 문예지 『백조(白潮)』와 사상지 『흑조(黑潮)』를 기획하였으나 『백조』만 3호까지 간행하였다.
『백조』 창간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에 참여하여, 『개벽』·『동명』·『여시』·『불교』·『삼천리』·『매일신보』 등에 시·소설·희곡을 발표하였다.
1923년 ‘토월회(土月會)’에 가담하여 문예부장을 맡은 것을 비롯하여 1927년 박진(朴珍)·이소연(李素然)과 함께 ‘산유화회(山有花會)’를 조직하였다. 또 1930년 홍해성(洪海星)·최승일(崔承一)과 함께 ‘신흥극장’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1929년경부터 친구 박진의 집에서 기거하는 등 한동안 방랑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자하문 밖 세검정 근처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였다.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아 근국청년단(槿國靑年團)운동에 가담하였으나,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지병인 폐질환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작으로 산문시의 일종인 「나는 왕이로소이다」·「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과 민요시인 「봄은 가더이다」·「해 저문 나라에서」 등을 꼽을 수 있다. 1976년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王)이로소이다』를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