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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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逑孝子旌門 |
영어음역 | Han Gu Hyoja Jeongmun |
영어의미역 | Monument Shrine to the Filial Piety of Han G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중대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양윤식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중대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한구의 정려각.
한구(韓逑)[1376~1447]의 본관은 광주로, 다섯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장성하여 모친상을 당하였다. 이에 두 분을 합장하고 광주의 여막에서 육 년간 상복을 벗지 않고 몸소 상식을 올렸으며, 혹 사람과 더불어 말할 때라도 이가 드러나지 않았고, 상기를 마칠 때까지 한 번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며 피눈물을 흘려 상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러한 효성이 귀감이 되어 유림이 조정에 상소하므로 1446년(세종 28)에 정려문을 내리고 성균진사로 표정하였다.
약 70년 전 광주군에 있던 효자정문과 묘소를 이곳 중대마을로 옮겨 왔다. 익공의 형식이나 전체적인 치목 수법으로 볼 때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익공식 겹처마 맞배집이다. 정려각 전면에는 홍살을 넣어 개방하고 중방 아래로 출입문을 내었으며, 측면과 후면은 벽체로 막았다. 측면과 후면의 중방 아래는 화방벽을 쌓았다. 조선시대 정려각의 일반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정려각 내부에 정려문 편액과 한구의 효행을 기록한 효행기가 함께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