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용인 출신의 효자. 김유는 도적들이 밤에 칼을 들고 집안에 침입하여 그 어머니를 찌르려 하자 맨 몸으로 달려들어 대신 죽었다. 그의 아내와 딸 역시 그 뒤를 이어 따라 죽었으나, 어머니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이 일이 임금님께 전해지자 효·열 3개의 정려(旌閭)가 내려졌다고 전하나, 읍지에 기록만 있을 뿐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1392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해 만들어진 용인현은 수원진영(水原鎭營)에 소속되었으며 남양부(南陽府)에서 관할하였다. 수원진에 부속된 시기에는 16개 면을 종5품의 현령이 다스렸으며,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1872년(고종 9)에 작성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로 보아 이와 같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시대 군사 시설 터. 처인군창은 고려시대에 처인성에 딸린 창고로 건축되었다.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용인현편 고적조(古蹟條)의 기록을 보면 “현의 남쪽 25리에 토축이 있는데 지금은 거의 퇴폐되었다. 군창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
조선 후기 용인 지역의 열녀. 김소사의 행실은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용인현 읍지』의 「충효열인」편에 수록되었다. 여기서 소사는 과부의 높임말이다. 용인현리(龍仁縣吏) 최재관(崔在寬)의 처이다. 김소사는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남편이 일찍 죽자 그 딸을 정성스럽게 키워서 출가시키고, 그 날 밤 극약을 먹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 이 일이 조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