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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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直 |
영어공식명칭 | Lee Ji-j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고려 말과 조선 초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유학자.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평(伯平), 호는 탄천(炭川)이다. 이당(李唐)의 손자이며,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둔촌 이집(李集)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380년(우와 6) 문과에 전구서승(典廐署丞)으로 2등으로 급제하여 한림원학사에 제수되고, 경승부소감으로 옮겼다가 평창·충주·청주의 현령을 차례로 역임한 후 강원도관찰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1398년(태조 7) 보문각직제학 재임 시 소도의 변란이 있자, 이를 극렬히 간하다 화를 입었다. 이때 태종 이방원과 변춘정(卞春亭)이 그를 강력히 변호하여 금고(禁錮)의 처벌만 받게 되었다. 이후 광주(廣州)의 탄천(炭川)에 은거하며 독서를 일삼았는데, 배우러 오는 사람이 모두 ‘탄천선생’이라 하였다. 1419년(세종 1) 태종의 유명에 따라 형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묘소]
이지직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세종 때 청백리에 녹선 되고, 후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운곡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