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동 내지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08
한자 內南洞內地-堂山祭
이칭/별칭 내남동 내지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후반 - 내남동 내지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 입구 우측 산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 입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대보름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소나무]|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날 오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내남동 내지마을 당산제는 할머니당산과 할아버지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셨던 마을 제의이다. 내지마을은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내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분적산(414m) 남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내남동은 광주광역시에서 화순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과거에는 육판마을이라고도 불렸는데, 풍수지리상으로 여섯 명의 판사가 나올 마을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내지마을을 지나는 도로를 현재도 육판서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은 6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전하나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마을 앞으로 광주광역시와 화순을 연결하는 남문로가 지나고 있으며, 2010년대 후반 내남지구가 형성되면서 마을 1㎞ 앞까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내지마을은 현재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 어느 정도 옛 농촌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내남동 내지마을 당산제의 시작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본래 여느 당산제처럼 마을 사람들 중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맞추어 제관을 선정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나,1980년대에는 당시 새마을 지도자인 김영조의 주도로 당산제를 지내왔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내지마을의 당산은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두 곳이 있었다. 할아버지당산은 마을 입구의 우측 산 위에 있는 소나무였다. 할아버지당산은 성황신으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할머니당산은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는 광주광역시 지정 보호수이며, 수령은 약 600여 년 되었다. 동구 내남동에 있으며, 나무 옆에는 마을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절차]

내남동 내지마을 당산제는 1990년대 초반에는 특별히 제관(祭官)을 뽑고 날을 결정하는 절차 없이 마을 주민인 김영조가 오랫동안 화주와 헌관 등을 겸하여 제를 지냈다. 김영조는 당시 새마을 지도자였는데 마을 앞에 도로를 내고 시내버스를 들어오게 하는 등 마을 편의 개선에 많은 일을 주도한 사람이다. 당시 축관은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였으나 대부분 같은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으며, 심부름 하는 사람 또한 마을 주민 중 깨끗한 사람으로 김영조가 결정하여 진행하였다. 제관에 특별한 선정 절차가 없는 이유는 내지마을 당산할머니가 순한 성격이므로 깨끗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 제일(祭日)이 되면 부정한 곳에 가지 않거나 비린 것을 먹지 않는 등 자발적으로 금기를 지켜왔다. 또한 목욕재계를 하고 집안과 마을을 청소하며 제를 준비한다. 공동샘은 청소하고, 제가 끝날 때까지 사용을 금한다. 금줄과 금토는 제일 사흘 전에 제관집 앞과 당산나무 주변에 쳐서 외지인과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제비(祭費)는 본래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하여 마련하였으나, 후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성의껏 갹출하여 비용을 마련하였다. 제기(祭器)는 당산 그릇이 있어 보관하였다가 다시 사용하였으며, 제물(祭物)은 돼지머리, 삼실과, 나물, 시루떡, 생쌀 등을 마련하는데, 제일 오전에 김영조 집에서 이웃들과 함께 장만하였다.

내남동 내지마을 당산제정월대보름 점심 이후 굿꾼들이 마을 앞에 모여 굿을 치면서 제를 알린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당산으로 가서 당산 주변을 돌면서 굿을 친다. 오후 3시 무렵이 되면 화주집으로 가서 제물의 뒤를 따르며 굿을 친다. 당산에 도착하여 진설이 끝나면 간단하게 제를 모신다. 헌식은 제물을 각각 백지에 싸서 당산나무 옆 헌식터에 묻고 황토와 납작한 돌로 눌러 놓는다. 헌식이 끝나면 당산 주위를 돌면서 굿을 한 판 하는데, 제를 다 올렸다고 당산에 고하는 것이다. 굿은 당산과 마을 사이의 다리, 큰 샘과 작은 샘 등에서 친다.

[부대 행사]

내지마을에서는 당산제가 끝나고 하는 마당밟이를 '당산걸궁'한다고 하였다.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당밟이를 하였다고 하나, 마을 자본이 어느 정도 마련된 후에는 걸궁이 중단되었다. 정월 하순이 되면 당산제 결산을 하고 마을의 일반적인 사항을 논의하였다.

[현황]

내지마을은 광주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마을공동체 문화가 잘 지켜지고 있다. 원로계와 장년계, 청년계로 조직이 구성되어 있어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주관하고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의 상례가 치러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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