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26 |
---|---|
한자 | 新光園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 415[불로동 17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별 |
건립 시기/일시 | 1920년 - 신광원 개업 |
---|---|
현 소재지 | 옛 서남대학교 병원 -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 415[불로동 174] |
원소재지 | 신광원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 |
성격 | 음식점 |
[정의]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요릿집.
[개설]
신광원(新光園)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출신 이동채(李東彩)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옛 그랜드호텔 뒤편 주차장 자리]에 개업한 요릿집이다. 신광원은 광주 주요 인사들의 출입처이기도 하였다. 신광원에서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들을 변호해주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아온 변호사들을 위해 위로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1934년에는 전남대학교 초대 총장 최상채(崔相彩)의 박사 학위 취득 축하회가 열렸다. 1935년에는 2.8독립선언의 주역이자 『동아일보』 편집국장 서리를 역임한 최원순(崔元淳)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인 계유구락부(癸酉俱樂部)가 주관한 만찬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만찬회는 안창호(安昌浩), 여운형(呂運亨) 등이 광주 지역에 강연을 온 것을 기념하여 열린 것이었다.
[위치]
개업 당시의 위치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22-7번지이다. 이후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74[옛 서남대학교 병원 자리]로 이전하였다.
[변천]
신광원은 광주천변 옛 적십자병원 자리에 있던 일식집 '하루노야[春乃家]'가 불로동의 옛 우미여관 옆으로 이전하자 그 자리로 이전하였다. 본래 신광원이 있었던 자리에는 또 다른 요릿집인 식도원(食道園)이 들어섰다. 신광원의 경영권은 이동채에 이어 정학권(鄭學權)에게 넘어갔다. 뒤이어 김용걸(金容杰)의 아버지 김창수(金昌洙)가 관리하면서 폐업될 때까지 경영하였다.
[형태]
신광원은 2층 건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외에 정확한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현황]
신광원이 폐업한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신광원이 있었던 첫 번째 자리에는 주차장이 있고, 이전한 자리에는 옛 서남대학교 병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등장한 최초의 한국식 요릿집이자 주요 인사들의 고급 사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