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99 |
---|---|
한자 | -打令[西區] |
영어공식명칭 | Banga-taryeong|A Miller's Song |
이칭/별칭 | 방아소리,방애타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6월 13일 - 「방아타령」[서구] 대구직할시 서구 성서3동 갈산마을에서 채록 |
---|---|
채록지 | 「방아타령」[서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 |
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유희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
가창자/시연자 | 서석재|이해호|이용길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유희요.
[개설]
전국에 분포하는 「방아타령」은 방아를 찧는 노동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불리는 유희요이다. 대구광역시에는 「방아타령」[북구]를 비롯하여 여러 종의 「방아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6월 13일 대구직할시 서구 성서3동 갈산마을에서 채록자 서석재, 이해호, 이용길로부터 「방아타령」[서구]이 채록되었다. 다만, 당시 채록한 장소에 관한 기록이 애매한 점이 있어 정확한 현재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고 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서구의 한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 및 형식]
「방아타령」[서구]은 메기고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부른다. 메기는소리를 한 구절 부르면 받는소리로 “오호 방애야”가 반복된다.
[내용]
일반적으로 전국에 분포하는 「방아타령」의 사설은 일정하게 전승되는 내용이 없고, 메기는 사람의 즉흥성에 의하여 구성되며, 대체로 인생살이에 관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갈산마을에서 채록된 「방아타령」[서구]은 한 음절 넉 자로 된 4음절의 메기는소리가 받는소리 “오호 방애야”의 마지막 “야”에 맞물려 들어가는 가창 방식을 보인다. 메기는소리의 사설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 호호 방해야/ 이 방하가 누 방하냐/ 강태공의 초적 방하/ 이 방하 걸은 연은/ 경신년에 걸은 방하/ 작은 아 큰아가/ 쿵덕쿵덕 찧더라도/ 방해코도 닳지 말고/ 방해싸개도 닳지 말고/ 수천 석 찧어 주소/ 녹음방초 성화시에/ 해는 어찌 쉽게 가노/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군 살림살이/ 요만 하면 만족하지/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건마는 / 가련하다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못 온다네/ 공산야월 두견조는/ 나와 같은 한이련가/ 월화에 슬피나 울어/ 울어 울어 한을 푸네/ 정월이야 대보름은/ 답교하는 명절인데/ 청춘남녀 짝을 지어/ 완월산보 말이 없나/ …….”
[현황]
방아를 찧는 노동과는 크게 상관없이 불리는 유희요인 「방아타령」[서구]은 간혹 여흥의 자리나 특별한 공연 등에서 여전히 불리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갈산마을에서 채록된 「방아타령」[서구]은 사설의 내용이 길고 다양하며, 받는소리가 끝나기 전에 메기는소리가 미리 들어가는 등의 특징이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