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98 |
---|---|
한자 | -打令[北區] |
영어공식명칭 | Banga-taryeong|A Miller's Song |
이칭/별칭 | 방아소리,방애타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5월 23일 - 「방아타령」[북구] 대구직할시 북구의 무태동 서변마을과 칠곡1동 관음마을에서 채록 |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6월 6일 - 「방아타령」[북구] 대구직할시 북구의 무태동 서변마을과 칠곡1동 관음마을에서 채록 |
채록지 | 「방아타령」[북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
채록지 | 「방아타령」[북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 |
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유희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유희요.
[개설]
전국에 분포하는 「방아타령」은 방아를 찧는 노동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불리는 유희요이다. 대구광역시에는 「방아타령」[북구]를 비롯하여 여러 종의 「방아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대구직할시 북구의 무태동 서변마을과 칠곡1동 관음마을에서 1987년 5월 23일과 1987년 6월 6일 「방아타령」[북구]이 채록되었다. 다만, 당시 채록한 장소와 날짜에 관한 기록이 애매한 점이 있어 정확한 현재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려우며, 현재 대구광역시 북구의 서변동과 관음동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 및 형식]
「방아타령」[북구]은 메기고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부른다. 메기는소리가 한 음절 부르면 “오~ 방헤야” 또는 “오~ 방애야”라는 후렴으로 받는다.
[내용]
서변마을에서 채록된 「방아타령」[북구]은 메기는소리에 2음절 형식이 많고, 1음절이 3자 또는 4자로 구성된다. 실제 메기는소리는 한 사람이 받는소리는 여러 사람이 구연하지만, 채록 당시의 여건으로 인하여 한 사람의 가창자가 모두 부른 것이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오~ 방헤야/ 오~방헤야/ 이 방아가 누 방아고/ 오~방헤야/ 경신년 경신시/ 오~방헤야/ 강태공 조작방아/ 오~방헤야/ 빙빙 돌아 돌방아/ 오~방헤야/ 둘이 찧는 가래방아/ 오~방헤야/ 하나둘이 찧는 방아/ 오~방헤야/ 열두 무리 잡수시요/ 오~방헤야.”
관음마을에서 채록된 「방아타령」[북구]의 사설은 일부 다른 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현황]
방아를 찧는 행위는 유희요인 「방아타령」[북구]은 간혹 여흥의 자리나 특별한 공연 등에서 여전히 불리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방아타령」[북구]은 유희요 「방아타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