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552
이칭/별칭 첫 생일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재영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맞는 첫 생일을 축하하는 의례.

[개설]

경상북도 청송군에서는 아이의 첫 생일인 돌을 기념하는 의례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풍속은 그 기원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조선 초기부터 왕실에서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로 치르던 공식적인 행사였으며, 16세기 중반 이전에 사대부와 백성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의례이다.

돌에는 아이에게 돌 빔을 지어 입히고 잔칫상을 차려 돌잡이를 하는 것으로 생후 1년이 되었음을 기념한다. 돌 빔은 이전까지 입던 흰색 위주의 옷에서 벗어나 원색 옷감으로 화려하게 만들고, 쓰개에서부터 신발, 장신구에 이르는 일습을 모두 갖추어 입힌다. 돌날 아침에는 삼신상을 마련하여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가족이 모여 미역국과 쌀밥을 나누어 먹는다. 또한, 가까운 친척과 지인을 초대하여 잔치를 여는데, 이때 돌상 위에 활과 화살, 책과 붓, 쌀과 돈, 실타래, 가위와 자 등 성별에 따라 다양한 물건을 늘어놓고 아이가 무엇을 잡는가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돌잡이를 한다.

아이를 위한 돌상에는 돌잡이 물품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음식을 차린다. 그릇 가득 담은 긴 국수 가락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흰쌀로만 쪄낸 백설기는 아이의 순진무구함과 티 없이 맑은 신성함을 상징한다. 돌상에는 반드시 수수로 둥근 경단을 빚어 팥고물을 묻힌 수수팥떡을 올리는데, 이는 붉은색 팥이 잡귀를 몰아내고 아이의 액을 물리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돌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쌀 등의 현물을 비롯하여 돈이나 돌 반지 같은 선물을 전하며 아이의 미래를 축원한다.

[연원 및 변천]

돌잔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돌잡이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있었던 풍속으로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부터 사대부와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확산하였다. 중국의 『안씨가훈(顔氏家訓)』에는 “강남 풍속에 아이가 태어나 한 돌이 되면 새 옷을 짓고 목욕을 시키고 장식을 단다. 남자는 활과 화살과 종이와 붓을, 여자는 칼과 자와 바늘과 실을 쓴다. 또한, 음식물과 진귀한 옷, 장난감을 아이 앞에 차려놓고 아이의 선택에 따라 장래를 시험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 이수광(李睟光)은 이를 인용하여 돌잡이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돌잡이 모습은 이문건(李文楗)의 『양아록(養兒錄)』과 오희문(吳希文)의 『쇄미록(瑣尾錄)』에 남아 있다. 이문건은 “임자년(1552년) 정월 5일 손자 숙길이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었다. 잡다한 물건을 진열하여 무엇을 잡는지 보는 것은 옛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했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오희문은 “효립(孝立)의 생일이어서 장난감을 놓고 먼저 집는 물건을 보았다.”라고 썼다.

사대부가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원자(元子)나 세자의 돌을 기념하여 돌잡이를 하였다. 『국조보감(國朝寶鑑)』의 1791년(정조 15) 6월 신유일(18일)의 기사에는 훗날 순조(純祖)가 된 원자의 돌을 기념하여 집복헌(集福軒)에 여러 가지 물건을 차려놓고 무엇을 집는지 확인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을 쓴 최남선(崔南善)은 돌잡이를 하는 까닭에 대해, 아이가 태어나 1년쯤 되면 앉고 서서 움직이며 슬기와 염량이 발달하니 이를 기회로 삼아 갖가지 물건을 놓고 생각 돌아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뒤, 돌잡이가 중국의 ‘시아(試兒)’ 또는 ‘시주(試周)’와 유사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돌잔치의 절차]

청송군에서는 돌이 되면 잔치를 벌여 아기의 생일을 축하한다. 이때는 백일 때보다 음식을 더 풍성하게 장만한다. 음식으로는 미역국도 끓이고 고기를 구워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그리고 아기에게는 좋은 옷을 입혀서 돌잔치를 한다. 또한 삼신에게도 아기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한편, 청송군의 지역민들은 돌잡이를 하는 가운데 아기가 먹, 붓을 잡으면 ‘선비가 된다.’고 하며, 만년필을 잡으면 ‘재주 있다.’고 한다. 또한 실을 잡으면 ‘오래 산다.’고 하고, 떡을 쥐면 ‘식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 부유하지 못하면 돌잔치를 크게 열기 어려웠기에 약식으로 떡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돌잡이 상에 올리는 물건은 집안의 가풍과 관련이 있다. 무인(武人) 집안과 달리 유교적 전통이 있는 집안에서는 활과 화살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사항]

남자아이의 돌잡이 상에는 종이와 붓, 책과 먹, 활과 화살 등 학문이나 무예와 관련된 물품을 올려놓고, 여자아이의 상에는 칼과 가위, 실패와 옷감, 자와 바늘 등 살림과 관련된 물품을 올린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상 위에는 공통으로 실 꾸러미와 국수, 곡식과 돈을 올려놓고 아이가 무엇을 집는가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 한다. 예컨대, 긴 실과 국수는 무병장수를 의미하고, 쌀과 곡식 혹은 돈은 부자가 될 것임을 예견한다.

남자아이가 활이나 화살을 집어 들면 용맹한 무인(武人)이, 책이나 붓·먹 등을 잡으면 학문에 능한 문인(文人)이 될 것이라고 보며, 여자아이가 칼 또는 자, 실패와 가위 등의 침선(針線) 도구를 집으면 재주가 뛰어나고 바느질과 길쌈에 능한 현모양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처럼 돌잡이에 사용하는 물건은 아이의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또한 돌잡이 상 위에 올려놓는 각각의 물건에는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역할과 그에 관한 기대가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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