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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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德里鄕校-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언 |
중단 시기/일시 | 2000년대 중반 - 마을 주민 감소와 고령화로 제의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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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향교 마을 제당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산15-1 |
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4일 밤 |
신당/신체 | 자연석|당집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향교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진보향교가 있는 향교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이 되면 마을 북동쪽의 제당(祭堂)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냈으나, 마을 주민 감소와 고령화로 동제를 지속하기 어려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향교마을 동제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으나 마을의 형성 시기 또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세거지(世居地)로서 성격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부터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향교마을은 조선 태종 때[1400~1418]에 백씨와 안씨들이 개척하였고, 명종 때[1545~1567]에는 귀암(歸巖) 권덕조(權德操)가 입향하여 안동권씨 세거지로 자리 잡았다.
[신당/신체의 형태]
향교마을의 신체(神體)는 진보향교에서 북동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30㎝ 정도의 삼각형 형태의 자연석이다. 1990년대까지는 넓적한 돌판 위에 신체인 자연석을 놓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에 금줄을 쳐 놓은 형태였으나, 현재는 약 3.3㎡ 정도의 콘크리트 건물로 당집을 조성하여 신체인 자연석을 모셔 두었다. 당집 내부 신체에는 금줄이 둘러져 있다. 신체를 둘러싸고 있던 소나무들은 없어졌으며, 이를 대신해 당집 옆에 새로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
[절차]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의 자연 촌락 중 절골과 읍동이 함께 동제를 지내며, 교동은 단독으로 지냈다. 향교 인근의 10여 가구 중 네 가구가 돌아가며 제관과 도가를 맡아,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동제를 지냈다. 정월 외에도 양력 8월 15일인 풋구 때가 되면 신체에 술을 한 잔 붓는 형태의 약식 제의를 지냈다.
[현황]
향교마을 동제는 2000년대 중반 무렵 중단되었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신체를 보존하기 위한 당집을 건립하였다. 비록 마을 신앙으로서의 제의는 중단되었으나, 현재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기도처로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