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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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立春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영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매년 2월 4일 무렵에 지내는 절기 풍속.
[개설]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으며,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입춘은 새해의 첫째 절기로 보통 양력 2월 4일 무렵에 해당되는데,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일 때로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드는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청송군에는 입춘이 되면 모든 행복을 나타내는 글귀를 적은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풍습이 있다. 입춘첩은 ‘춘축(春祝)’이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입춘은 새해에 드는 첫 절기라서 궁중과 지방에서 여러 의례를 베풀었다.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 입춘하의조(立春賀儀條)에 의하면, “인일(人日)의 축하 예식과 동일하나 다만 입춘에는 춘번자(春幡子)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를 입춘하례(立春賀禮)라고 한다. 입춘날에 백관이 대전에 가서 입춘절을 축하하면 임금이 그들에게 춘번자를 주고, 이날 하루 관리에게는 휴가를 주었다. 또한 『예기(禮記)』에 의하면, 계동(季冬)에 궁중의 역귀를 쫓는 행사인 대나의(大儺儀) 때 “토우를 만들어 문 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낸다[出土牛以送寒氣]”고 하였는데, 고려 때는 입춘에 토우를 내는 일이 시행되었다. 함경도에서는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 나와 돌아다니는 의례를 갖는데, 이는 흙으로 소를 만들어 겨울의 추운 기운을 내보내는 중국의 옛 제도를 모방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행한다고 하였다. 간혹 제주도와 같이 입춘날 굿놀이를 하는 지역도 있다.
청송군에서는 입춘이 되면 입춘축을 붙이는 풍습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지금도 청송군 각지에서 이러한 풍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절차]
청송군에서는 입춘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입춘축을 붙이는데, 글씨를 잘 못 쓰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붓글씨를 잘 쓰는 학자에게 부탁하였다. ‘입춘대길(立春大吉)[입춘을 맞이하여 크게 길하게 한다]’이라는 문구를 비롯하여 ‘건양다경(建陽多慶)[밝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한다]’ 등 여러 가지 다양한 글귀가 있다. 대개 대문과 방문, 문설주 등에 붙인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하여 밤중에 붙이기도 하지만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는 써 붙이지 않는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다. 대개 가로 15㎝ 내외, 세로 70㎝ 내외의 한지 두 장을 마련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 한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 자와 ‘호(虎)’ 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입춘축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붙였다. 지금도 청송의 여러 마을에서는 입춘축을 붙이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입춘에는 닥쳐오는 일 년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 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이 옛날에는 있었으나, 근래에는 더러 입춘축만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절일(節日)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입춘첩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국태민안(國泰民安)[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 가급인족(家給人足)[집집마다 먹고사는 것에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땅을 쓰니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니 만복이 나온다] 등과 같은 문구가 널리 사용되었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써 붙여 그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므로 입춘첩에는 기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매년 입춘 때마다 새로 글씨를 써서 붙이며, 작년에 붙였던 것은 떼어 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