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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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炳烈妻綾州具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김홍수 |
사당|배향지 | 어천리 효열각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 3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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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능주 |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열녀.
[가계]
능주구씨(綾州具氏)는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퇴우당(退憂堂) 박승종(朴承宗)[1562~1623]의 10대손인 박병렬(朴炳烈)의 아내이다.
[활동 사항]
능주구씨는 열다섯 살 때 박병렬에게 시집왔다. 남편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명문가의 자제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윗대 조상에서 관직이 삭탈되고 가산이 적몰(籍沒)되어 파산이 나 버린 집안이었다. 열다섯 어린 신부 구씨로서 살림을 꾸려 나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고, 더욱이 홀로된 시어머니를 봉양하려 해도 땡전 한 닢 나올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구씨는 손이 닳도록 이웃집에 빨래품, 바느질품, 길쌈품, 방아품을 팔아 가면서 시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공양하였다.
1902년부터1903년 두 해에 걸쳐 흉년이 들어 초근목피로도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게 되자 살던 곳을 떠나 객지를 떠돌다가 충청북도 진천(鎭川)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그즈음 시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구씨는 치료약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면서 병구완을 극진히 하는 한편 그 병세를 살피려 시어머니의 변을 맛보며 하늘에 시어머니의 병이 낫게 해 달라고 빌었다.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그 시신을 고향 땅에 모시지 못하고 진천에 안장하였다.
구씨 남편 박병렬은 지병을 앓고 있어서 잘 걸을 수가 없었다. 구씨는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남편을 등에 업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니 남편의 병에는 뱀 쓸개를 먹으면 특효가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뱀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엄동설한이라 구할 길이 없었다. 구씨는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밤낮으로 신령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 집 마당 가장자리로 큰 뱀 한 마리가 굼틀굼틀 기어 들어왔다. 구씨는 기뻐하며 뱀을 잡아 그 배를 가르고 쓸개를 빼내 남편에게 먹게 하였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 후 남편이 눈병이 들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자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구씨에게는 진천에 안장되어 있는 시어머니가 늘 마음속에 걸려 있었다. 구씨는 어려운 사정에 여비를 장만해서 단신으로 진천까지 가서 시어머니의 유골을 모시고 청송으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여비가 모자라서 주야로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어느 날 밤 호젓한 산길을 가는데 큰 호랑이가 떡하니 구씨의 앞을 막고 서 있었다. 구씨는 유골을 담은 상자를 품에 안고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더니, 호랑이가 구씨의 효성에 감복되었는지 어슬렁거리며 사라지면서 길을 비켜 주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에 능주구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효열각(孝烈閣)을 건립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