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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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純道 |
영어공식명칭 | Cho Sundo |
이칭/별칭 | 경일(景一),남포(南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73년 - 조순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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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53년 - 조순도 사망 |
출생지 | 안덕리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거주|이주지 | 청송도호부 - 경상북도 청송군 |
수학지 | 남포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함안 |
대표 관직 | 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개설]
조순도(趙純道)[1573~1653]는 임진왜란 때 군량 수송 및 병사 수습에 힘을 기울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고 부정(副正)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일(景一), 호는 남포(南浦).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5형제 중 셋째이다. 형 조수도(趙守道)·조형도(趙亨道), 동생 조준도(趙遵道)·조동도(趙東道)가 모두 현달하였다.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을 지낸 조연(趙淵), 부인은 이구(李球)의 딸 정부인 선성이씨(宣城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순도는 1573년(선조 6) 청송도호부 안덕리(安德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출생하였다. 20세가 되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둘째 형 조형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둘째 형의 만류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대신 독운사(督運使)가 되어 군량을 수송하고, 흩어진 병사를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여 주위 사람들이 조순도를 좌원수(坐元帥)라고 불렀다. 본적지인 함안(咸安)이 일본군의 진격로가 되어 선조의 분묘가 파손되는 화를 당하였다. 이에 조순도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함안으로 달려가 급히 묘역을 정비하고, 선조의 사판(祠版)과 친지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품행(品行)과 도의(道誼)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천거되었고, 부정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품계와 관직은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까지 올랐다. 조순도는 고향 남포(南浦)[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오두막을 짓고 노년을 보냈다.
[묘소]
처음에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비봉산(飛鳳山)에 장사 지냈으나, 뒤에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의 금대(金臺)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순도가 지은 정자인 남포정(南浦亭)이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다. 경내에 남포공휘순도신도비각(南浦公諱純道神道碑閣)이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이가원(李家源)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