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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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顯光 |
영어공식명칭 | Jang Hyeongwang |
이칭/별칭 | 덕회(德晦),여헌(旅軒),문강(文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석정길 53[장전리 958-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순한 |
출생 시기/일시 | 1554년 - 장현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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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1년 - 장현광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 저술 |
활동 시기/일시 | 1602년 - 장현광 공조좌랑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장현광 순천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장현광 합천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10년 - 장현광 사헌부지평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장현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55년 - 장현광 의정부좌찬성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655년 - 장현광 청송 송학서원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55년 - 장현광 선도비 건립, 동락서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57년 - 장현광 영의정 추증 |
출생지 | 인동도호부 - 경상북도 구미시 |
사당|배향지 | 송학서원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
사당|배향지 | 천곡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리 |
사당|배향지 | 동락서원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
사당|배향지 | 임고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
사당|배향지 | 빙계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인동 |
대표 관직 | 사헌부지평 |
[정의]
조선 후기 청송의 송학서원에 배향된 성리학자.
[개설]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조선 후기 경상도 안동도호부 출신의 학자이다. 퇴계학파의 학맥을 계승하였으며, 청송 지역에 많은 학문적 영향을 끼쳤다. 또한 청송의 송학서원(松鶴書院)에 배향되었다.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 시호는 문강(文康). 사천현감 장우(張俁)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장열(張烈), 어머니는 경산이씨(京山李氏)로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낸 이팽석(李彭錫)의 딸이다.
[활동 사항]
장현광은 일찍이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을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여러 문인들로부터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퇴계 이황의 대표 제자인 유성룡(柳成龍)은 장현광의 학식에 감복하여 아들을 그의 문하에 보내어 배우게 하였다. 장현광은 여러 차례 조정에 추천을 받았지만 나가지 않았다. 다만 1602년(선조 35) 공조좌랑으로 부임하여 정부의 『주역(周易)』 교정사업에 참여하고 이듬해 잠시 의성현령으로 부임한 것 외에는 모두 사양하였다.
한편, 장현광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청송도호부 지역으로 피난하였다.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 있는 병암 화강암 단애는 당시 범이 떨어져 죽은 곳이라 하여 '범덤' 또는 '범더미'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장현광이 그곳에 굴을 파고 피란했다 하여 그의 호를 따서 여헌대(旅軒臺)라고도 부른다. 여헌대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절경을 이룬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여헌집(旅軒集)』을 남겼으며, 그 외 『성리설(性理說)』, 『역학도설(易學圖說)』, 『용사일기(龍蛇日記)』 등의 저서가 있다.
[묘소]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655년(효종 6) 의정부좌찬성, 1657년(효종 8)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청송의 송학서원을 비롯해, 구미 동락서원(東洛書院), 성주 천곡서원(川谷書院), 영천 입암서원(立巖書院)·임고서원(臨皐書院), 의성 빙계서원(氷溪書院) 등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