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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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學正路-冊板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보라 |
간행 시기/일시 | 1909년 - 『성학정로』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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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청송 달성서씨 석간정 -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25-9 |
간행처 | 청송 부강서당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평리 213-1 |
성격 | 고문헌|책판 |
저자 | 김종덕 |
간행자 | 청송 부강서당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21자 |
규격 | 저서 31.6㎝[세로]|21㎝[가로], 책판 20.2㎝[세로]|47.8㎝[가로] |
어미 |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 |
판심제 | 성학정로 |
[정의]
1909년 청송 부강서당에서 간행한 조선 후기 김종덕의 저서와 책판.
김종덕(金宗德)[1724~1797]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로 의성 사촌 출신이다. 1753년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학문에만 전념하여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계 진출을 사양하였다. 또한 과거란 선비의 학문에 대한 뜻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배척하였다. 1779년(정조 3)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김종덕은 이상정의 문인 가운데 정종로(鄭宗魯), 이종수(李宗洙)와 더불어 호문삼종(湖門三宗) 내지, 유장원(柳長源), 이종수와 더불어 호문삼로(湖門三老)로 불렸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퇴계 학통의 정맥을 계승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성학정로(聖學正路)』저서는 김종덕이 성학의 바른 길을 제시한 글로, 논어 가운데서 중요한 어구를 뽑아 풀이한 책이다. 안동과 청송 유림들은 부강서원을 세워 이상정, 유치명(柳致明), 김종덕을 배향하고자 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무산되었다. 그 기금으로 이상정의『약중편』, 유치명의『주절휘요』, 김종덕의『성학정로』를 1909년에 청송의 부강서당에서 책판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성학정로』저서는 1책으로 목판본이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1㎝, 세로 31.6㎝이며, 10행 21자이다, 판심제는 성학정로이다. 『성학정로』책판의 크기는 가로 47.8㎝, 세로 20.2㎝로 2017년 현재 24장이 남아 있으며, 1장이 결락되었다. 책판은 청송 달성서씨 석간정에서 소장하고 있다.
[구성/내용]
『성학정로』는 1책으로 서문은 김종덕이 작성하였다. 공자·안자·증자의 설을 기본으로 하여 논설을 편집한 일종의 심하서이다. 동용모폭만(動容貌暴慢), 출사기원비배(出辭氣遠鄙背),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거처공(去處恭), 집사경(執事敬), 지이적불가기(知夷狄不可棄)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는 문중과 서원을 중심으로 주로 문집류와 족보류가 간행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청송 부강서당에서 『성학정로』와『약중편』,『주절휘요』 등의 유가서를 판각, 간행하였다는 것은 이 시기 청송만의 독특한 문화적 경향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