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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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鳳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73[월막리 381-4]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관 |
건립 시기/일시 | 1428년 - 운봉관 청송군의 객사로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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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일제강점기 - 운봉관 정당 및 서익사 철거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0년경 - 운봉관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17년 - 운봉관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2년 - 운봉관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71년 - 운봉관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8년 - 운봉관 정당 및 서익사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08월 07일 - 운봉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운봉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운봉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73[월막리 381-4] |
성격 | 객사 |
양식 | 와가 |
정면 칸수 | 3칸[정당]|각 5칸[동·서익사] |
측면 칸수 | 3칸[정당]|각 3칸[동·서익사] |
소유자 | 청송군 |
관리자 | 청송군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조선시대 청송도호부의 객사 건물.
[개설]
운봉관(雲鳳館)은 고려·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되었던 관사(館舍) 건물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객사 정당(正堂)에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달을 보면서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장소로 활용되었고, 좌·우익사 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와 외국의 사신 등 고을을 방문한 주요 손님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청송도호부의 객사는 운봉관이라 명칭하였는데, 이는 고려 초기 잠시 사용한 운봉현(雲鳳縣)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위치]
[변천]
운봉관 객사 건물은 1428년(세종 10)에 군수 하담(河澹)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으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쓴 기문(記文)에 1600년경 한 차례 중건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717년(숙종 43) 부사 성환(成瑍), 1812년(순조 12) 부사 강휘옥(姜彙鈺)이 각각 중건하였고, 1871년(고종 8)에 부사 윤현기(尹顯岐)가 일신(一新) 중수한 바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 이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 활동이 일어났을 때 청송의 유생들이 1896년 정월에 청송의진(靑松義陣)을 결성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경에는 정당과 서익사가 강제 철거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2008년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정당과 서익사를 복원하였다
[형태]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동·서의 익사를 배치하였고, 각각 정면 5칸, 측면 3칸 대청마루에 방 한 칸씩을 들인 개방현 건물로 되어 있다.
[현황]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08년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없어진 정당과 서익사를 복원하여 현재는 조선시대의 객사 건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