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440
한자
영어공식명칭 Stupa
이칭/별칭 탑파(塔婆),불탑(佛塔)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집필자 박병선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불교 예배의 주요 대상이 되는 조형물.

[개설]

청송 지역에는 전통 사찰이 많지 않아 탑도 제작 시기가 오래된 것은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靑松理村里五層石塔)대전사(大典寺)보광사(普光寺)에 있는 삼층석탑(三層石塔) 정도이다. 그러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지 않아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탑은 이촌리 오층석탑 하나에 불과하다.

[탑의 종류]

탑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나 유품 등을 봉안하기 위해 높게 만든 구조물이다. 범어(梵語)의 ‘스투파’에서 온 말로 한자로는 ‘탑파(塔婆)’라고 한다. 탑은 원래 부처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은 무덤을 일컫는 말이었다. 따라서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곳이기 때문에 매우 존귀한 존재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반드시 사찰의 중심부인 법당 앞에 세운다.

탑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나무로 세운 목탑(木塔), 돌로 세운 석탑(石塔), 벽돌을 사용한 전탑(塼塔), 돌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 청동으로 만든 청동탑(靑銅塔), 금동으로 만든 금동탑(金銅塔), 철로 만든 철탑(鐵塔) 등으로 불린다. 또한 형식에 따라 정형탑(定型塔)과 이형탑(異型塔)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4세기 후반부터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목탑이 건립되다가 삼국시대 말기에는 목탑을 모방한 석탑이 백제에서 건립되고, 신라에서는 전탑을 모방한 석탑이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우리나라는 대부분 석탑으로 건립되었다. 탑의 모양도 인도나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탑은 사각이 일반적이며, 층수는 대부분 삼층, 오층, 칠층, 구층의 홀수 층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려시대 원 간섭기 이후에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같이 팔각의 짝수 층 탑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현재 청송 지역에 남아 있는 탑은 모두 정형화된 석탑이며, 이형탑은 없다.

[탑의 구조]

탑의 구조는 크게 상륜부(上輪部)와 탑신부(塔身部), 기단부(基檀部)로 나눈다. 상륜부는 탑의 가장 위쪽 옥개석 위에 있는 부분으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위대함을 상징한다. 탑신부는 상륜부와 기단부 사이의 몸체 부분으로,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을 석탑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탑신부에는 사리(舍利)와 금동불상 등의 유품을 봉인하기도 하였다. 기단부는 탑의 아랫면에 만들어진 부분으로, 건축에서 지면에 쌓아올린 단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탑에 따라 기단의 수가 다른데, 통일신라시대에는 이층 기단이 일반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통일신라 말기부터는 단층 기단이 많다.

현재 청송 지역에 전해지는 제작 시기가 오래된 탑 가운데 상륜부, 탑신부, 기단부 등이 원형 그대로 고루 갖추고 있는 것은 없다.

[청송 지역의 탑]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은 청송군 진보면 이촌리 서북쪽 고개에 남아 있던 이층 기단 위의 구층석탑이었다. 그러나 1942년 진보읍 이촌리 마을회관 앞으로 옮기면서 오층석탑으로 조성하였으며, 2008년 3월 청송민속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의 탑신부의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지나치게 두터워 보이는 옥개석은 낙수면을 급한 경사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탑신의 몸돌은 1층이 상당히 높다가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드는 형태이다. 상륜부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 있다.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왜소해 보여 안정감이 덜하며, 돌을 다듬는 솜씨나 지붕돌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탑의 높이는 3.5m이고,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대전사 삼층석탑은 청송 지역 사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대전사에 있는 석탑이다. 대전사 삼층석탑은 원래 금강탑(金剛塔)이라는 쌍탑이었는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되어 탑신석과 기단석의 일부만 남아 보광전 앞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2004년에 그것을 기초로 새로운 부재를 이용하여 새롭게 복원하였다.

대전사 삼층석탑의 남아 있던 탑신부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정교하게 돋을새김되어 조각된 부분이 있다. 사천왕상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등을 도상화한 것이다. 탑신의 조각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대전사 삼층석탑은 오늘날까지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었다면 보물급 문화재로 인정받을 만한 수준의 탑이었다고 평가된다.

보광사의 삼층석탑도 대전사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2기 이상의 탑재를 모아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보광사 삼층석탑의 전체 높이는 162㎝ 정도이고,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옥개석의 지붕 받침은 1층은 1단, 2층과 3층은 3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낙수면은 1층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2층과 3층은 급격한 경사를 이루는 형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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