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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30022
한자 龍仁彌平里藥師如來立像
분야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로81번길 38-9[미평리 66-16]
시대 고려
집필자 박영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고려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9월 19일연표보기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4호
현 소장처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로81번길 38-9[미평리 66-16]
원 소재지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로81번길 38-9[미평리 66-16]
출토|발견지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로81번길 38-9[미평리 66-16]
성격 불상
재질 석조
크기(높이) 4.3m
관리자 심효언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4호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조약사여래입상.

[개설]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미평리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이 불상이 있는 곳은 예부터 미륵부처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미륵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불상이 있는 마을은 건지산, 수정산, 경수산 등의 크고 작은 산들 사이에 형성된 곡간평야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불상 주변에는 치석 흔적이 있는 6개의 석주가 있고, 기와편, 자기편 등이 산포되어 있어 절터임을 알 수 있지만, 절의 명칭은 알 수 없다.

[형태]

미평리 약사여래입상은 현재 남동향으로 서 있으며, 높이는 430㎝, 어깨 너비 130㎝, 두께 50㎝이다. 입석과 같은 형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에서 하반신까지는 하나의 돌로 만들고, 보개와 발은 별도로 만들었다. 불상은 측면에서 보면 약간 납작한 형태이며, 뒷면에는 간략한 선으로 몇 줄의 옷주름을 새겼다.

두부는 높이 140㎝인데,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크다. 머리는 소발이며, 머리 위에는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은 방형의 보개를 얹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눈은 길고 가늘며 눈썹은 호형의 굴곡을 그리고 있다. 코는 다소 크게 표현되었지만 뭉툭하여 섬세하지 않으며, 큰 코에 비하여 입은 다소 작다. 귓불은 턱선까지 내려온다. 두꺼운 목에는 삼도가 있다.

비교적 조각이 뚜렷한 얼굴 부분과는 달리, 신체 부분은 얕게 부조하여 평면적으로 처리하였다. 착의법은 통견이며, 하반신에는 ‘U’자형의 옷주름이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다. 하반신 중앙에는 세로선을 음각하여 양 다리의 윤곽을 드러냈다.

손목에는 팔찌를 착용하였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정병을 쥐고 있는데 손 일부가 파손되었다. 팔은 신체에 비하여 짧고 손이 작으며, 구부리고 있는 팔의 형태는 어색하다.

양 발은 발가락이 표현된 발 앞부분만을 각각 별도의 석재로 제작하였는데, 원래는 불신에 끼워 맞춘 형태였을 것으로 유추된다. 대좌와 광배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불상 앞에는 방형에 가까운 편평한 자연석이 놓여 있는데, 원래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는 불상의 공양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징]

불상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보개를 쓰고 있다. 이러한 불상은 경기 남부, 충청 지역에 다수 분포되어 있어, 고려 전기 이 지역의 특징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거석불들은 신체에 비해 머리가 커서 비례가 부자연스러운 점, 토속적인 이목구비의 모습, 보개를 쓰고 있는 점 등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충남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충북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경기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충남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등이 있다. 이러한 불상들과 다수의 공통적 요소를 보이고 있는 미평리 약사여래입상은 고려 전기 경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던 거석불 양식 불상의 계보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의 가장 큰 도상적 특징은 정병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정병은 관음보살의 지물로 알려져 있으나 불상이 정병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고려 시대에 불교가 수도 중심에서 지방으로 확산되고, 많은 불상이 민간 주도로 행해지게 된 점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된다. 즉 불상의 존명과 상관없이 지역적 특수성이나 현실 생활의 밀접한 기원, 바램 등이 반영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 불상의 예는 인근의 안성 대농리 석불입상이 있으며, 경북 김천 금릉 신안동 석불입상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은 고려 전기의 경기 남부,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조성되었던 보개를 쓴 거석불 양식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 불상의 존재는 고려전기 용인 지역까지 불교가 확산되었고, 이 지역에 이러한 거불을 제작할 수 있는 세력을 가진 집단이 존재하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불상임에도 정병을 들고 있는 점은 이 불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고려전기 불상의 도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특이한 예로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15 단순오탈자 수정 원남면 -> 원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