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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 쓰고 소가 된 농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826
영어음역 Gamtu Sseugo Sogadoen Nongbu
영어의미역 A Farmer in Official Hat to be a Cow
이칭/별칭 「소가 된 사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집필자 정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역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농부|소
관련지명 대치고개|청덕리|우명동
모티프 유형 소가 된 사람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전승되는 감투 쓰고 소가 된 농부 이야기

[개설]

일하기 싫어하며 부귀와 권세만을 부러워하던 사람이 양반들이 쓰는 감투라도 한번 써보고 싶어 내기를 했다가 소가 된 후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는 전설로서 모현읍 능원리 우명동의 지명 유래에 해당한다.

[채록/수집상황]

1980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이야기』에 실려 있다.

[내용]

한 농부가 살았다. 그 사람은 농사를 짓다가도, ‘어떤 놈 팔자 좋아 말 타고 한양 가서 과거하는데, 이놈의 신세는 하릴없이 땅만 파니 부모 잘못 만난 것이 원수로다!’ 하면서 푸념을 하였다. 그러면서, ‘나도 글줄이나 배웠더라면 과거라도 보련만은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니 이런 청맹관이 언제 한번 양반 탕건 써보려나!’ 하였다. 농부는 지체 높은 양반들이 쓰고 다니는 정자관을 한 번이라도 써 보는 것이 늘 소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인점을 가려고 대치고개를 넘으려는데 한 노인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둑판을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 농부는 다리도 좀 쉬어갈 겸 그 옆으로 갔다. 노인이 먼저 말을 건넸다.

“자네 한가하거든 나와 바둑이나 한수 두세그려.”

하고 권하자 농부 역시 바둑이라면 별로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내기 바둑을 두자고 청하였다. 노인은 이를 쾌히 승낙하면서,

“만일 내가 지면 내 머리 위에 있는 정자관을 주려니와 자네가 진다면 술 한 잔만 받아 오게나!”

하였다. 농부는 이것이야 말로 양수겹장이라고 생각했다. 진다 하더라도 나이로 보아 훨씬 위고 양반이니 별로 자존심이 상할 것이 없는 일이고,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고작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백두서민이요, 농사나 짓고 사는 젊은 자기가 늙은 양반 노인을 이긴다면 양반의 상징인 정자관을 얻을 수 있으며 양반이 상것에게 내기를 하여 정자관을 빼앗긴다면 그 얼마나 수치스런 일이 되겠는가. 이러나저러나 밑질 것이 없을 것 같아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인이 놓은 바둑을 보니 정석이 못되고, 행마다 제 길을 택하여 놓지 못하고 있었기로 한 수 위의 실력을 발휘하여 단판으로 불계승을 거두었다. 희색이 만연한 농부는 약속대로 정자관을 내 놓으라고 말했다.

노인은 순순히 벗어 놓았다. 농부는 “영감의 실수이니 나를 원망치 마시요.” 하면서 관을 머리에 썼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갑자기 몸에서 황소털이 돋아나고 머리에 썼던 정자관은 쇠뿔이 되어 머리에 들러붙었다. 그 뿐 아니라 육신이 점점 커지더니 네 발로 서야만 몸을 가눌 수 있었다. 농부가 커다란 황소가 되자, 노인은 느닷없이 고삐를 씌웠다. 소로 변해 고삐를 쓴 농부는 움직이지 못하고 노인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면서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길가는 사람을 보고 좀 구해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입에서는 움메- 소리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하릴없이 소가 되어 용인장(그 때는 구성면이었다)으로 끌려가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처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청덕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이르자 소가된 농부는 목 놓아 울었다. 영문도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웬 소가 저 모양으로 극성스럽게 우냐고 하였고,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든지 사람들은 소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우명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소가 되어 장에 끌려온 농부는 어느 사람에게 팔렸다. 노인이 소를 건네며, “이 소는 절대 무밭 곁에는 데려가지 마시오! 만일 무를 먹으면 그때부터는 소를 부리지 못하게 되오이다.” 라고 말하였다. 소가 되어 팔려간 농부는 밤낮 고된 일에 시달렸다. 밭도 갈고 논도 갈고 짐도 날랐다. 그러다가 조금만 꿈지럭거리면 회초리로 얻어맞으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이삼 년을 견디다 못한 농부는 무나 실컷 먹고 죽어야겠다면서 무밭으로 가려고 했지만, 노인이 미리 단속을 해두었기 때문에 그도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해 가을 김장철이 되자, 주인은 무를 마당 한 가운데 잔뜩 쌓아놓았다. 소가 된 농부는 밤이 되자 천신만고 끝에 외양간을 빠져나와 마당에 쌓아둔 무를 밤새도록 먹어 치웠다. 새벽녘이 되자 머리에서 뭐가 툭하고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노인과 바둑을 둘 때 얻어 쓴 그 정자관이었다. 그것이 벗겨지니 신기하게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농부는 그 저주스러운 정자관을 갈래갈래 찢어 던지며, ‘이놈의 감투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하고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 착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소가 되어 울던 고개 아래는 지금도 우명동이라고 불리고 있다.

[모티프 분석]

이 설화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는 ‘소가 된 사람’ 모티프를 기본구조로 하고 있다.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인간의 게으름과 허영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소로 변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용인에는 ‘소가 된 사람’ 을 모티프로 삼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양지리에서 채록된 바 있다. 「소로 만들어 판 여우」가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우가 게으름뱅이를 소로 만들어 팔았다는 내용으로 「감투 쓰고 소가 된 농부」와 달리 소를 속여 파는 주체가 노인에서 여우로 되어 있다. 게으른 사람을 속여 소로 만들기 위해 꾀 많은 여우를 등장시켜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감투 쓰고 소가 된 농부」는 용인 지역의 지역 유래담으로서 전설로서의 성격을 띠고 잇다. 우명동은 소가 되어 고개를 넘던 농부의 울음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붙인 마을 지명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이 모티프는 청덕리와 우명동과 같이 용인의 구체적인 장소와 결부되면서 용인의 지역 전설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3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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