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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면 미륵뜰 미륵고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703
한자 遠三面彌勒-彌勒告祀
영어음역 Wonsam-myeon Mireuktteul Mireukgosa
영어의미역 Maitreya Village Festival of Wonsam-myeon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 미륵뜰
집필자 홍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2월|음력 8월 상정일(上丁日)
의례장소 미평리 미륵뜰
신당/신체 미륵불상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미륵뜰에서 미륵불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는 마을 단위나 개인적으로 미륵고사를 지내는 곳이 네 곳이나 된다. 구체적으로 목신리 구봉마을과 문촌리 문시랭이, 두창리 주내마을, 미평리 미륵뜰의 미륵고사가 그것이다. 본래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아주 오래 전에 미륵불을 조성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 셈이다. 미륵불은 대강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면 미륵고사도 그와 연륜을 같이하는 셈이다.

원삼면에서 지내는 미륵고사는 마을 단위로 근처 사찰에서 승려를 데려다 불교의례로 거행하기도 하며, 개인적으로 제수를 준비하여 고사 형식을 빌려 기원하기도 한다. 시기는 일정치 않으며, 대체로 봄날 날을 정해 행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언제부터 제사를 지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아마 이 마을이 생긴 후부터 계속 있어 온 것”이라는 마을 어른의 말처럼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신당/신체의 형태]

미륵뜰에서 모시는 미륵불은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높이 430㎝, 둘레 340㎝로 굉장히 큰 편이다. 원삼면에서는 미륵불의 크기로 성별을 구별하는데, 미륵뜰의 미륵불은 남자 미륵이고,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미륵불은 이곳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여자 미륵이라고 한다.

죽산리에서는 미륵불에 지붕을 지어서 집을 만든 반면, 미륵뜰의 미륵불은 지붕을 만들기만 하면 무너져서 대신 미륵불의 머리 위에 돌로 삿갓을 씌워 놨다. 미륵불의 왼쪽 귀가 떨어져 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 액을 막기 위해 떼어갔다고 하기도 하고, 한국전쟁 때 총에 맞아서 떨어져 나갔다고 하기도 한다.

[절차]

미평리 미륵뜰 미륵고사는 일 년에 한 번 봄날에 지내는데,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봄날 중에 좋은 날을 따져서 맹리에 있는 정원사 주지승이 정해 준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끼리 제사를 지내다가 10년 전부터 정원사 주지승이 염불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주지승이 오기 전까지 동네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기다린다. 지금은 미륵 주위에 울타리를 둘렀지만 예전에는 제사 날짜가 정해지면, 며칠 전에 새끼를 꼬아서 미륵 주위에 금줄을 둘러, 마을 사람들도 제사 당일이 되어서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사 경비는 마을의 공동 자금으로 하거나,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 내게 된다. 이때 쌀로 내는 사람도 있고 돈으로 내는 사람도 있다. 제사 음식은 간소하게 차린다. 마을 사람들이 각출한 쌀로 만든 백설기와 메, 탕 등의 제물을 차리게 된다.

제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약 30명 정도로, 마을 부녀회장을 중심으로 대체로 마을의 부녀자들이 지내 왔다.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간다. 제사 때 절을 하는 횟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고 싶은 만큼 하게 된다. 절을 할 때는 돈을 내는데, 이때 내는 돈은 주지승이 공양으로 가져간다.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마을회관으로 가지고 와서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는다.

[현황]

미륵뜰에서는 보통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마을 제사를 지내지만, 개인적으로 미륵불을 찾아가서 제물을 올리고 기원을 드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빌 때는 혼자 가거나 두세 명이 같이 가는데, 보통 떡과 냉수를 올려놓거나, 쌀을 가져가서 도로 가져오는 등 간소하게 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유영옥 할머니는 미륵불 옆에 살면서 매일 같이 미륵불을 찾아가서 청소를 한 뒤 물을 떠놓고 절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의 아들인 김순재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가끔씩 찾아가 청소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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