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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178
한자 金爀
영어음역 Kim Hyeok
이칭/별칭 오석,김학소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진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기도 용인시
성별
생년 1875년 10월 16일연표보기
몰년 1939년 4월 23일연표보기
본관 미상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호는 오석(吾石, 烏石), 본명은 김학소(金學韶)이다.

[활동사항]

김혁은 1875년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1900년 1월 육군 참위로 임관, 육군정위로 군무하던 중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항일 투쟁을 결심하고 고향인 경기도 용인으로 돌아왔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백두산 아래 화룡현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와 백두산 동북쪽 왕청현의 북로군정서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흥업단을 조직하여 부단장으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북로군정서의 서일계화가 병력 증강을 위해 이성규를 국내로 보내 대한제국 시기 육군 장교로 활동한 김규식·홍충희·김찬수·박형식 등과 결합하고자 했을 때, 김혁 역시 유우석과 함께 북로군정서에 참가하여 대일 항쟁에 전념하였다.

또 1922년 8월 30일에는 환인현 남구 마권자에서 8개 항일 단체 대표 71명이 참석하여 조직한 통의부의 군사부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4년 초에는 북만주 지역으로 돌아와 현천묵을 총재로 하는 대한독립군정서를 조직하고 조성환·나중소·김규식·이장녕·김필·권영준 등과 함께 참모로 활동하였다.

1925년에는 김좌진과 함께 북만주 영안현에서 재야 혁명가들을 모집하여 신민부를 조직하고 군인 양성에 노력하였다. 1927년 2월 중동선(中東線)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경리부원장 유정근과 본부직원 김윤희·박경순·한경춘·남중희·이종순·이정하, 고문 남극 등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어 1929년 6월 14일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62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8.21 [활동 사항] 수정 <변경 전> 김혁은 1875년 10월 대한제국 육군정위로 군무하던 중, <변경 후> 김혁은 1875년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1900년 1월 육군 참위로 임관, 육군정위로 군무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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