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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048
한자 許筬
영어음역 Heo Seong
이칭/별칭 공언,악록,산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재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48년연표보기
몰년 1612년연표보기
본관 양천
대표관직 이조판서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동생인 허봉(許篈)허균(許筠)이 있으며, 여동생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활동사항]

허성(許筬)[1548~1612]은 1568년(선조 1) 생원이 되고,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었다. 1590년(선조 23) 전적(典籍)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과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황윤길은 침략 의도를 지적하였으나 김성일은 침략 우려가 없다고 하자, 김성일과 같은 동인(東人)인데도 그 의견에 반대하여 침략 가능성이 있음을 직고하였다.

정언(正言)·헌납(獻納)을 지내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강원도소모어사(江原道召募御史)를 자청하여 군병 모집에 진력하였다. 그 후 응교(應敎)·사인(舍人)을 거쳐, 1594년(선조 27)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고 이듬해 대사간(大司諫)·부제학(副提學)을 지내고, 예조판서(禮曹判書)·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한 뒤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저술 및 작품]

동생 허봉허균, 여동생 허난설헌 등과 함께 당시 이름난 문장가였으며, 성리학에도 통달하였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악록집(岳麓集)』이 있고, 글씨에 「허엽신도비(許曄神道碑)」가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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