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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001
한자 趙訒
영어음역 Jo In
이칭/별칭 경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영문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광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55년연표보기
몰년 1631년연표보기
본관 한양
대표관직 첨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경민(景敏). 아버지는 조수린(趙壽麟)이며 조인은 여섯째 아들이다. 부인은 영덕정씨(盈德鄭氏)이다.

[활동사항]

조인(趙訒)[1555~1631]은 조선 중기 명종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모와 태도가 크고 위엄이 있어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벼슬하지 않은 일반인으로 의주까지 임금을 모시고 갔던 공훈(功勳)이 인정되어 감찰(監察)에 제수되었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이후 여러 고을의 군수를 역임했으나 벼슬을 물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광해군 때 조정에서 다시 불렀으나 정치의 어지러움에 분개하여 출사하지 않고 충주 고백동(古栢洞)[현재 이천시 율면 고당리]에 은거하였다. 조인은 후손들에게 도학(道學)에 힘쓰라며 “내 자손들이 고관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다만 자손들에게 바라는 것은 도학을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하여 학문과 실천을 이 도학에 바탕을 두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산 4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원종공훈(原從功勳)으로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3.11 묘소 수정 묘소 위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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