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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937
한자 李天基
영어음역 Lee Cheongi
이칭/별칭 재원,허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산매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광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용인시
성별
생년 1607년연표보기
몰년 1671년연표보기
본관 연안
대표관직 감사

[정의]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재원(載元), 호는 허주(虛舟). 아버지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시정(李時程)이다.

[활동사항]

이천기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았고 예의범절에 밝았다. 1653년(인조 13)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별과로 급제하여 승지(承旨)·한림(翰林)·삼사이랑(三司吏郞)을 역임하였고, 벼슬은 감사(監司)에서 그쳤다.

정언(正言)으로 재직하던 중 1641년 광해군의 초상 때 대사간(大司諫) 이덕수(李德洙)와 함께 예조에 올린 계사(啓辭)에 백관이 변복하고 모여서 곡한다는 등의 말로 물의를 빚자, “광해가 버림받은 것은 인륜의 바깥에 있는 것이지 연산의 황란(荒亂)과는 다르므로 쫓아내고 폐하였을 때는 비록 죄인이나 관을 덮은 뒤에는 은혜를 가하여 왕자의 열에 서게 함이 마땅하다.”하고 “인조께서 은혜와 예의를 특별히 더하여 비록 대우를 지나치게 했다 하여도 이것은 성상의 큰 덕에서 나온 일이므로 신하가 감히 말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이 말이 망령스러운 것임을 스스로 반성하여 삭탈관직을 자청하였고, 또 대사간 이명한(李明漢)의 상소도 있어 관직을 그만두었다.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살림이 가난하여 몸소 생업활동에 종사하여 모친을 섬겼고, 벼슬살이를 할 때는 한 가지 물건도 사사로이 취하지 않았다. 평생 재물을 멀리하여 서울에 집 한 채가 없었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산매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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