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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33
한자 白光彦
영어음역 Baek Gwangeon
이칭/별칭 풍암,충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홍영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해미
대표관직 사간원정언|병조정랑|형조참의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가계]

본관은 해미(海美). 호는 풍암(楓巖).

[활동사항]

백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용맹하고 과감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의 권세가 높아지자 도내(道內)의 문무사류(文武士類)가 모두 이와 결탁하였으나, 홀로 동조하지 않은 까닭에 미움을 받아 1589년(선조 22) 북청판관(北靑判官)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592년 모친상을 당하여 전라북도 태인에 머무르고 있는 중에 임진왜란을 만나 전라감사 겸 순찰사(全羅監司兼巡察使) 이광(李洸)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었다. 이 때 이광이 전라도병사 8,000명을 이끌고 공주까지 북상했다가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퇴각하자, 2만 여 명의 군사를 모아 전열을 재정비한 뒤 수원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용인성 남쪽 10리에 이르러 좌군선봉장 이지시(李之詩)와 함께 문소산(文小山)의 적진을 협공하였으나 패전하여 모두 전몰하고 말았다.

[상훈과 추모]

1834년(순조 34)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모충사(慕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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