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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09
한자 閔升鎬
영어음역 Min Seungho
이칭/별칭 복경(復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민재궁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영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830년연표보기
몰년 1874년연표보기
본관 여흥
대표관직 병조판서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활동사항]

1860년(철종 11) 명릉참봉에 임명되었고,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 여동생이 왕비로 책봉되자 중용되어 이조참의, 1867년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72년 형조판서가 되고, 1873년 병조판서에 올랐다.

이 무렵 서계(書契) 문제로 일본 메이지정부[明治政府]의 국교 요청이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국서수리 거부정책으로 나타나자, 이에 반대하여 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李最應)과 모의한 다음 박정양(朴定陽)을 부산에 파견하여, 당시의 형세를 관찰하게 하였다.

1873년 이후 민씨 척족의 우두머리로서 흥선대원군 축출공작을 폈다. 대원군의 실각과 함께 국정을 장악하였지만, 1874년 폭탄이 장치된 우송 소포의 폭발로 일가와 함께 폭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민재궁에 있다. 민영환(閔泳煥)이 쓴 묘갈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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