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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군창 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493
한자 處仁軍倉址
영어음역 Cheoingunchang Teo
영어의미역 Site of the Cheoin Arsena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43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사시설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지정면적 5,820평[성 내부 면적]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43 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시대 군사 시설 터.

[변천]

처인군창은 고려시대에 처인성에 딸린 창고로 건축되었다.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용인현편 고적조(古蹟條)의 기록을 보면 “현의 남쪽 25리에 토축이 있는데 지금은 거의 퇴폐되었다. 군창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고적조의 기록에는 “처인성, 현으로부터 25리 떨어져 있다. 토축인데 지금은 거의 무너졌다. 군창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군창이 폐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위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43번지에 있다. 해발 70.9m되는 낮은 구릉의 앞 끝자락에 위치하며, 주변이 도로 및 전답으로 둘러싸여 있다. 용인과 진위, 안성을 있는 요지이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7년 처인성의 토축 복원 당시 일부 학자에 의하여 백제 때의 토성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으나 2002년 지표 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후기 이후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 2002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철제대도와 철모, 화살촉과 창, 칼 등이 출토되어 군창으로서 전투를 치렀다는 상징성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특히 남문지 문대의 바닥 층에서 채취한 목탄의 탄소 측정 결과 1950년도를 기준 연도로 하여 640±60연대로 측정되어 1310년을 기준으로 빠른 시기로는 1250년 늦은 시기로는 1370년까지의 연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 시기는 대략 고려 고종 말년과 원종의 시기를 거쳐 공민왕 시기까지로, 이른바 원과의 밀접한 시기에 불탔을 가능성이 95%의 확률임을 시사하고 있다.

[현황]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당시에도 이미 처인군창은 퇴락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인군창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토축의 연장 길이는 425m이다. 내부 면적은 5,820평이고, 경사면이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흘렀고, 중앙부에는 2백여 평쯤 되는 둔덕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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