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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조광조묘및신도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421
한자 文貞公趙光祖墓-神道碑
영어음역 Munjeonggong Jo Gwangjo Myo Mit Sindobi
영어의미역 Tomb and Memorial Stone of Jo Gwangj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산55-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주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10월 18일연표보기 - 문정공조광조묘및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제16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문정공조광조묘및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양식 원형합장분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관련인물 조광조(趙光祖)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 산55-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기념물

[정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개설]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하였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여 훈구파(勳舊派)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인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의 무고로 능주(凌州)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선조(宣祖) 초에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문집으로 『정암집(靜庵集)』이 있다.

[위치]

조광조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심곡서원 맞은편 응봉산[236m] 산자락의 남동쪽에 자리잡은 한양조씨 세장지의 상부에 안장되어 있다.

[변천]

조광조의 묘는 돌아간 다음해에 선영이 있는 용인으로 이장되었다. 이장한 뒤 묘역을 조성하고 그의 평생 사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된 이씨(李氏)와의 합장묘이며, 원형의 봉분이다. 봉분 중앙에 묘표와 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상석 좌우로 문인석·망주석이 각각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으로 된 묘표(墓表)는 봉분 중앙에 새워져 있다. 장방형 비좌의 4면에는 국화문 및 안상과 상부에 복련문이 수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백색 대리석으로 된 비신 앞면에 종5열로 묘주인 조광조의 주요 관직과 부인인 정경부인 이씨가 명기되어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소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묘표와 같은 양식이다.

[금석문]

신도비 앞면 상단에는 전자(篆字)로 “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文貞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이라 횡서(橫書)했다. 비문은 노수신(盧守愼)이 짓고, 이산해(李山海)가 글씨를 썼으며, 김응남(金應南)이 전액을 썼다. 비의 규모는 총높이 약 311㎝, 비신의 높이 244㎝, 폭 93㎝, 두께 34㎝이다. 신도비는 1585년(선조 18)에 건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사대부의 묘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묘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의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와 명필이 만든 것으로 금석학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1999년 10월 18일 경기도 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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